디지털 화폐 개발에서 가장 앞선 중국이 자국의 법정 ‘디지털 위안화’ 설계를 마무리하고 잇따른 공개 테스트를 통해 시스템 안정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지도부는 글로벌 경제 패권을 위해서는 통화 주도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인 디지털 위안화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공식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위안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비 진작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8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수도 베이징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공개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도에서 새로운 화폐에 대한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디지털 위안화 운용에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시 둥청구에서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디지털 위안화 예약 신청과 추첨을 통해 당첨된 5만 명에게 디지털 위안화 200위안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총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이 뿌려지는 것이다. 분배 받은 디지털 위안화는 10일부터 17일까지 지정 온·오프라인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디지털 위안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2019년 말에 이미 기본 설계를 마쳤다.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각 지방을 거점으로 국민들을 상대로 공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선전과 쑤저우에 이어 올해 1월에 선전(2차), 이번 2월에는 베이징이 대상이 됐다.
테스트를 진행할수록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는데 선전에서 단순 오프라인 점포 결제가 이뤄졌다면 쑤저우에서는 전자상거래에서의 온라인 결제도 시도됐다. 올해 상하이에서의 테스트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기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탈피해 일반 체크카드 형태로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1월 선전에서는 10만 명이, 이번 베이징에서는 5만 명이 이벤트에 참여하는 등 규모도 커졌다.
이러한 공개 테스트를 통해 안정화를 이루고 이르면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2월까지 공식 출시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방침이다.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실제 이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에서 공개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베이징의 한 금융 관계자는 “언제라도 출시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중국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과도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거듭되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내수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화폐가 소비 심리를 키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번 베이징시의 디지털 위안화 공개 테스트는 행사 이름으로 ‘디지털 왕푸징, 빙설 쇼핑데이’를 내걸었다. 시민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일종의 지원금 형태로 지급해 소비하게 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당국이 디지털 화폐 도입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기존 실물 위안화로는 ‘달러 제국’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는 새로운 통화 수단인 디지털 화폐로 글로벌 통화 시장 주도권을 잡아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위안화 제국’ 건설에 나서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에 오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앞서 중국식 모바일경제시스템(페이)이 중국에서 정착한 후 한국과 동남아 등 세계로 확산됐다는 점에서 디지털 위안화도 중국 내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후 중국 경제 세력권에 있는 나라들로 침투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자신의 경제블록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통해 해외에서의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확대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의 국제 시스템 구축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화폐연구소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와 공동 출자해 1월 합작 법인을 베이징에 설립했다. 주요 사업 내용은 디지털 통화 등과 관련한 정보 시스템의 통합, 데이터처리, 기술 컨설팅 등이다. SWIFT는 국제 결제망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이징=최수문 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