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가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백 전 장관 구속 수사에 실패하면서 청와대 등 윗선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연결 고리’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백 전 장관은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이 낮다’는 취지의 평가 보고서가 만들어질 당시 주무 부처 장관으로 청와대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지를 입증할 핵심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백 전 장관에 대한 신병 확보 불발로 ‘청와대 등 윗선으로 수사의 칼날을 겨눈다’는 계획에 재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게다가 ‘무리한 수사로 정권 흔들기에 나섰다’는 정부 여당의 비판에 직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법원의 영장 기각…명분 잃은 검찰 수사
대전지법의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9일 0시 40분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백 전 장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지 약 4시간 만이다.
오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로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다”와 “범죄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 등을 들었다. 검찰은 앞서 지난 4일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등을 혐의로 적시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월성 1호기 폐쇄에 앞서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월성 원전 운용 주체인 한수원 측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백 전 장관 측에 힘을 실었다. 백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국정 과제였다”고 밝혔다. 특히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절차로 (원전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도 ‘불법행위가 없었다’거나 ‘아는 바가 없다’는 등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윗선 수사에 제동 걸리나
백 전 장관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검찰이 수사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백 전 장관이 구속됐다면 최장 20일 동안 청와대 등 윗선과의 ‘교감’이나 지시, 보고 등이 이뤄졌는지 등을 수사할 수 있었지만 쉽지 않아졌다는 평가다.
검찰은 일단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청와대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 수사 대상으로 언급됐던 김수현 전 사회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소환 조사도 물거품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전 수석의 경우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문건에 ‘산업비서관 요청 사항’과 함께 ‘후속 조치 및 보안 대책(사회수석 보고)’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핵심 피의자일수록 신병 확보가 중요한 건 구속 기간 중 검찰이 주요 혐의에 대한 집중 조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백 전 장관의 경우 윗선 등과의 연결 고리로 꼽히는 핵심 인물인데 구속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검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백 전 장관을 기소한다해도 수사가 청와대 등 윗선으로 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그만큼 검찰 내 고민도 깊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권 흔들기 수사 비판…尹 책임론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수사 실패가 정부 여당의 비판이라는 부메랑으로 날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두고 지금껏 정치적 비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를 직접 챙겨왔다는 점에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윤 총장은 지난해 12월 1일 법원의 직무 정지 집행정지 인용으로 복귀하자마자 대전지검 형사5부에서 올린 주요 피의자 3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다. 이들은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거나 관여한 산업부 공무원 3명이었다. 이후 법원의 업무 복귀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같은 달 25·26일에도 출근해 관련 부서 보고를 받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앞선 7일 인사에서도 ‘패싱’ 논란에 휩싸였던 윤 총장이 마지막 보여줄 카드는 수사 뿐이었다”며 “핵심 수사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윤 총장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현덕 기자 always@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