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백운규 영장 기각, '조기폐쇄 지시' 증거부족 때문?…檢 "더 철저히 수사"

■수사 동력 잃은 검찰

'윗선 의혹' 규명 차질 불가피

檢 “채희봉은 예정대로 소환”

정권 흔들기 비판 직면 가능성

尹총장 책임론도 부각될 듯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8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대전=연합뉴스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8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대전=연합뉴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백 전 장관의 신병 확보 실패로 청와대 등 윗선의 관여 여부를 규명하는 검찰의 수사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대전지법의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9일 0시 40분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미 주요 참고인이 구속된 상태이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여서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앞서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백 전 장관이 산업부 공무원들의 월성 원전 관련 업무 과정에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며 구속영장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담았다. 또 월성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도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백 전 장관은 앞서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 관련 530건의 자료 삭제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둔 산업부 공무원 3명의 행위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의 청와대 등 윗선 수사는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과정에 청와대 등 윗선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여부를 입증할 핵심 인물로 꼽아왔다.

검찰은 “정부 정책에 대한 과도한 정치 수사를 당장 멈추라”고 주장해온 여권으로부터 “애초 무리한 영장 청구였다”는 거센 비판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지검은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렵지만, 더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는 짤막한 공식 반응을 내놨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하며 재청구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단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예정대로 소환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0월 20일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한 시민이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를 바라보고 있다. /경주=연합뉴스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0월 20일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한 시민이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를 바라보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보이지 않는 손' 수사 제동…탈원전 진실 이대로 묻히나

법원이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의혹 수사가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백 전 장관 구속 수사에 실패하면서 청와대 등 윗선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연결 고리’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백 전 장관은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이 낮다’는 취지의 평가 보고서가 만들어질 당시 주무 부처 장관이었다. 따라서 검찰 입장에서는 청와대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지를 입증할 핵심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이날 백 전 장관에 대한 신병 확보가 불발되면서 ‘청와대 등 윗선으로 수사의 칼날을 겨눈다’는 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게다가 ‘무리한 수사로 정권 흔들기에 나섰다’는 정부 여당의 비판에 직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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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백운규 지시 입증 못했나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주요한 이유는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한 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 부장판사에 따르면 이날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하여 한수원 및 그 관계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위 관계자들의 월성 1호기 관련 업무를 방해하다고 주장했다. 백 전 장관은 영장 심사에서 원전의 즉시 가동중단을 지시하거나 경제성 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오 부장판사는 검찰의 예봉을 꺾었다. 오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및 그로 인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되어야 한다”면서 검찰이 백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만큼의 소명을 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이에 검찰이 백 전 장관의 조기 폐쇄 지시를 입증하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이 지시해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 중단할 것’이라는 취지의 방침을 정하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는 검찰이 백 전 장관 지시 사실은 충분히 입증했으나 그로 인한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은 백 전 장관의 직권 밖이었다고 법원이 판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윗선 수사에 제동 걸리나

백 전 장관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검찰이 수사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백 전 장관이 구속됐다면 최장 20일 동안 청와대 등 윗선과의 ‘교감’이나 지시, 보고 등이 이뤄졌는지 등을 수사할 수 있었지만 쉽지 않아졌다는 평가다.

검찰은 일단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청와대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 수사 대상으로 언급됐던 김수현 전 사회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소환 조사도 물거품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전 수석의 경우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문건에 ‘산업비서관 요청 사항’과 함께 ‘후속 조치 및 보안 대책(사회수석 보고)’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핵심 피의자일수록 신병 확보가 중요한 건 구속 기간 중 검찰이 주요 혐의에 대한 집중 조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백 전 장관의 경우 윗선 등과의 연결 고리로 꼽히는 핵심 인물인데 구속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검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백 전 장관을 기소한다해도 수사가 청와대 등 윗선으로 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그만큼 검찰 내 고민도 깊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권 흔들기 수사 비판…尹 책임론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수사 실패가 정부 여당의 비판이라는 부메랑으로 날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두고 지금껏 정치적 비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를 직접 챙겨왔다는 점에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윤 총장은 지난해 12월 1일 법원의 직무 정지 집행정지 인용으로 복귀하자마자 대전지검 형사5부에서 올린 주요 피의자 3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다. 이들은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거나 관여한 산업부 공무원 3명이었다. 이후 법원의 업무 복귀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같은 달 25·26일에도 출근해 관련 부서 보고를 받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앞선 7일 인사에서도 ‘패싱’ 논란에 휩싸였던 윤 총장이 마지막 보여줄 카드는 수사 뿐이었다”며 “핵심 수사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윤 총장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안현덕 기자 always@sedaily.com,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안현덕 기자 always@sedaily.com·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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