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55·사진) 카카오 의장이 10조 원이 넘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 최소 5조 원 이상을 기부하게 되는 것으로 개인 명의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김 의장은 8일 카카오 전사 신년 메시지를 통해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며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기부 서약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10조 원에 달하는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격동의 시기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기부 방향에 대해서는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조만간 기부 서약을 맺고 구체적인 기부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 의장의 이른바 ‘카카오 시즌2’는 기업 혹은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의장은 현재 본인 명의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회사 ‘케이큐브홀딩스’ 명의로 카카오 지분을 각각 13.74%(1,217만 631주), 11.21%(992만 9,467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 총지분율이 24.95%(2,210만 98주)로 이날 종가 기준 지분 가치는 10조 997억 원에 달한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외에도 카카오게임즈 지분 1.3%(74만 6,500주)도 보유하고 있다.
주식 자산만 5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김 의장의 기부액은 정보기술(IT) 업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워낙 큰 금액인 만큼 김 의장의 기부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카카오 관계자는 “김 의장이 과거부터 최고경영자(CEO) 100명 양성, 사회 변화를 위한 ‘임팩트 프로젝트’ 등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며 “최근 카카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위원장을 맡아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하고 지속 가능 경영 전략 방향성 점검에 나서는 등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꾸준히 고민 중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사회 공헌 방법을 고민해온 김 의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실제 김 의장은 지난 2017년 한 인터뷰에서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를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덤인 것 같다”고 밝히며 재산을 환원할 의지를 전하는 등 꾸준히 사회 공헌에 대한 의지를 내비쳐왔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인 김 의장의 성장 배경이 ‘통 큰 기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의장은 할머니를 포함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고 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어릴 때 단칸방에 살며 골방을 빌려 공부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김 의장은 지난달 친인척들에게 카카오 주식 33만 주(이날 기준 1,508억 원)를 증여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인 스스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 성공한 자수성가 사업가인 만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평소에도 남달랐다”며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나갈 생각’이라는 것은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기업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이익공유제’ 등이 논의되자 선제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 의장은 카카오 설립 이전에도 경제적 자유를 얻은 성공한 IT 기업인이었다”며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카카오의 기업 규모가 급속히 불어나고 여론의 관심이 쏠리니 피로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워낙 큰 금액인 만큼 기부 방식과 방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의장은 이날 메시지에서 “구체적으로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고 밝혔다. 아울러 기부 방안에 대해 직원들의 의견도 듣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만간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크루(직원) 간담회를 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며 “구체적인 계획은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참여) 기회도 열어 드리겠다”고 전했다. 직원들의 참여 기회를 열어 두겠다고 언급한 만큼 재산 환원 과정에서 카카오 사업과의 연계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부는 구체화된 방안도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018년 카카오 계열사들이 설립한 ‘카카오임팩트 재단’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100개의 임팩트 프로젝트’를 꼽는다. 임팩트 프로젝트는 ‘사회를 바꾸는 충격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다.
카카오임팩트 재단은 김 의장 개인 재산이 아닌 카카오 계열사 자금으로 이뤄진 만큼 김 의장이 재단에 대규모 사재를 추가로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김 의장이 2006년 카카오 전신인 ‘아이위랩’을 설립하며 밝혔던 ‘100인의 최고경영자(CEO) 양성’ 프로젝트는 목표를 달성했다. 카카오벤처스가 지난해까지 스타트업 170여 개에 투자했고 카카오 계열사는 현재 104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100명의 CEO 육성을 마쳤으니 이제 100개의 임팩트 프로젝트에 더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남다른 혁신으로 카카오를 성장시킨 창업자인 만큼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