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20여 일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뒤늦은 통화에서도 예상됐지만 두 정상은 덕담보다는 현안 문제를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홍콩과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 문제를 제기했고 시 주석은 중국의 내정(內政)임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도 강조했다. 통화 후 바이든 대통령은 적극적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면서 국방부에 대중국전략수립팀을 구성했다. 말로만 강경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와 달리 이제 미국은 분명한 전략과 구체적인 행동으로 중국을 압박하려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취해왔다. 두 강대국을 조절할 수 있다는 기대가 멋있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경제라는 도식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실제 정책은 중국에 경사되는 모습이었다. 홍콩이나 위구르 등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했고 시 주석의 방한에 집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중국의 시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축하하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미국에 대해서는 방위비 분담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한미연합훈련 강화에 주저하고 있고 북핵 위협 상황임에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했다. 그래서 한미 정상의 통화는 미일 정상 간 통화(지난달 28일)보다 늦은 지난 4일에야 이뤄졌다.
균형 외교 자체부터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다. 이미 한국은 68년 전인 1953년에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어 편을 정했기 때문이다. 휴전 상태를 제외하더라도 한국에 중국은 적대 관계에 있는 북한의 동맹국이고, 중국에 한국은 세계 질서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래서 중국은 2010년 3월 북한이 한국의 군함인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11월에 한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했지만 북한 편을 들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나오지 못하게 방해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중국의 시 주석은 네 차례나 북한의 김정은을 만남으로써 북한의 입장을 강화시켜줬다. 한국이 아무리 친하고자 해도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바이든·시진핑 통화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미중 양국의 대결 관계가 악화될수록 한국의 균형 외교는 더욱 부적절해진다. 양국 모두에 버림받는 상황이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현재 북한의 심각한 핵 위협에 직면해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달 개최된 제8차 당대회에서 핵 무력 증강을 지속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남북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공언했다. 한국 공격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전술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한국은 다음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공격할 때 한국을 보호해줄 국가가 누구인가. 천안함·연평도·비핵화와 관련해 드러난 바와 같이 중국은 북한이 도발할 경우 6·25전쟁 때처럼 북한을 위해 싸울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를 공언하면서 한국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동등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국가 안보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하는 것이지 요행을 바라거나 장담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의 중국 경사에 실망해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현 정부는 그러할 경우에도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방책이 있는가. 그런 일이 절대로 없다면서 국민을 안심시킬 것인가. 미국의 안보 공약이 불안해진 것으로 북한이 오판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민족 전체가 공멸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균형 외교라는 겉멋에 도취해 한미 동맹을 경시한다는 것은 국가 안보를 놓고 도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만전지계(萬全之計)를 강구하고 있다면서 보고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