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쇼핑몰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상장 장소로 택했다. 미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4년 중국 알리바바 데뷔 이후 가장 큰 외국 회사의 기업공개(IPO)가 될 것”이라며 쿠팡의 기업가치가 500억 달러(55조 4,000억 원)를 넘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쿠팡이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대어(大魚)’가 한국 대신 미국을 택한 배경을 보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쿠팡은 자금 조달과 미래 시장 가치 등 여러 측면을 감안했겠지만 창업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부여된 차등의결권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 장소를 결정했을 것이다. 쿠팡은 주당 1표의 의결권을 지닌 보통주 클래스A와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지닌 클래스B로 구성된다. 회사 측은 이른바 차등의결권으로 김 의장에게 ‘슈퍼 주식’을 보유할 자격을 줬다. 스타트업들은 성장을 위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주의 의결권이 희석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는데 이를 막는 장치 중 하나가 차등의결권이다. 상당수 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에 맞춰 구글 등은 창업주에게 1주당 10~20배의 차등의결권을 주고 있다.
우리 재계도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일부 인사들은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을 기업에 대한 특혜로 호도했고 여권은 외려 기업을 때리면 표가 된다는 계산 아래 ‘기업 규제 3법’ 등으로 족쇄를 채우기에 바빴다. 정부와 국회는 쿠팡의 뉴욕행을 계기로 투기 자본에 맞설 장치를 법제화하고 규제 3법도 과감히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계속된다면 상장은 물론 생산 시설의 엑소더스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재정으로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아마추어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