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에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하고 자녀 얘기를 쏟아내는 학부모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과 개학으로 인해 폭증하는 학부모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만 합니다. 교사들은 사생활도 없는 건가요.”
전국 초·중·고교 개학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국 43만여명 교사들이 학부모 연락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개인 휴대폰 번호를 학생·학부모에게 공개하고 상담·민원 전화를 받다보니 근무시간과 사생활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교사를 중심으로 업무와 사생활의 분리를 원하는 직장인 고객들의 니즈가 점점 커지면서 관련 ICT(정보통신기술)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KT(030200)는 지난 해 교원 사생활 보호를 위한 ‘KT 교사매니저’ 서비스를 공개해 호평을 받았다. 학부모가 교실 유선 전화로 전화를 걸면 교사는 개인 휴대폰으로 착신 수신할 수 있도록 해 개인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지 않는다. 별도의 장치 없이 유선전화와 PC를 연결하는 지능망 기술을 이용하면 된다. 스마트폰 한 대에 번호 두 개를 부여하는 ‘투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별도로 알뜰폰 요금제를 이용하는 휴대폰도 개통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대구광역시교육청이 지난 해 전국 시·도 교육청 중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KT는 여기에 더해 올해 휴대폰 기반으로 사생활 보호 기능을 강화한 ‘랑톡’ 서비스를 개발해 보급에 나섰다.
업무용 플랫폼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도 있다. 카카오(035720) 계열사인 키즈노트의 온라인 알림장 서비스 ‘키즈노트’는 교사의 개인정보 노출 없이 학부모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학부모와 교사를 연결해주는 메신저 ‘플러그’, 교육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료 안심번호를 발급받아 사용하면서 메신저 기능까지 더한 ‘클래스팅’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지란지교컴즈와 에스엠티앤티가 공동 개발한 ‘쿨모바’는 교사 전용 안심번호를 제공하는 등 교사 마음 잡기에 나서고 있다.
직장인들의 사적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서비스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에서 업무와 사적인 관계가 뒤엉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멀티프로필’ 기능을 도입했다. 대화 상대별로 최대 3개까지 서로 다른 프로필을 노출할 수 있도록 해 사회적 정체성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보이스피싱 등 사기에 악용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친 이용자만 사용할 수 있다.
애플은 사생활 보호를 최대 셀링 포인트로 내세워 성장한 케이스다. 최근 모든 앱과 웹사이트에서 사용자 추적 여부를 일일이 확인받도록 운영체제인 iOS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사용자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앱 마켓의 앱 상세 소개 페이지에도 앱의 정보 처리 방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지 못하게 된 페이스북 등 사업자들은 애플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황이다.
데이터 수집·활용이 기업의 최대 경쟁력으로 꼽히는 흐름 속에서 개인정보 보호 기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는 적극적인 활용과 더불어 비식별화 기술 적용을 통한 개인정보 보호라는 두 축으로 움직일 것”이라며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해서라도 데이터 클래시피케이션(중요도 분류)이 전제가 되는 ‘데이터 거버넌스(데이터 관리체계)’ 관점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지현 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