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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 "왜 광고에서는 주인공이 죽으면 안 되나요"

"세상이 모두 아름답지만은 않은데

예쁘고 멋진 것만 담는 건 거짓말"

판에 박힌 클리셰 깨트린 광고로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 시선 한 몸에

MZ세대 '신우석표 장르'에 열광

영상에 미친 친구들과 '옥탑방 결의'

학맥·인맥도 없이 광고계 뛰어들어

8년 무명 견뎌내고 '핫한' 제작자로

"창의력 기르는 데 왕도 있을 수 없어

용기 내고 직접 뛰어드는 것이 중요"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




# 주인공이 정글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피사체에 갖다 댄다. 그런데 느닷없이 곰이 등장한다. 여느 카메라 광고에서처럼 멋진 사진에 만족해하는 주인공은 없다. 대신 마지막 장면에는 ㅇㅇㅇ(1976~2016), 주인공의 영정 사진으로 광고가 마무리된다.



# 미세 먼지 농도가 1,527㎍/㎥으로 ‘최악’ 수준인 오는 2053년의 서울. 집 밖으로 외출할 때는 방독면을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암울한 시대, 20년 전에 운행이 중단돼 폐허가 된 지하철 역사가 배경이다. 혼자 남겨진 주인공에 말동무가 되는 것은 오로지 만질 수 없는 홀로그램 인공지능(AI)뿐, 주인공은 외로운 일상을 어어간다.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감독)가 만든 광고와 웹드라마의 일부분이다. 그를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돌고래유괴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 감독은 광고계에서 가장 ‘핫’한 제작자다. 최현석·안정환이 등장한 캐논 광고를 통해 광고계에 눈도장을 찍었고 유니클로 감탄 팬츠, 브롤스타즈와 그랑사가 등 게임과 신세계 쓱 광고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대중은 환호했고 각종 광고제를 휩쓸었다.

신우석은 광고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통할 정도다. 그가 만든 광고는 본론과 본론 사이에서 건너뛰는 콘텐츠가 아니라 일부러 찾아보는 콘텐츠가 됐기 때문이다. 돌고래유괴단이 찍은 ‘그랑사가’의 게임 광고인 ‘연극의 왕’은 나온 지 석 달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했다. 광고뿐 아니라 ‘잠은행’ ‘고래먼지’ 등 웹 드라마는 웬만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콘텐츠라고 불린다.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


◇광고는 ‘시간’을 내는 콘텐츠…상품인 동시에 작품=“세상이 아름답지 않은데 예쁜 연예인이 미소 짓는 광고, 거짓말이잖아요. 광고는 작품이 아니고 상품이지만 예쁘고 멋진 단편만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고민의 흔적, 철학이 담겨야 합니다. 그래서 상품인 동시에 작품입니다.”

예쁜 연예인이 긴 드레스를 입고 와인 잔을 든 채 미소 짓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며 멋진 카피라이트가 올라가는 일반적인 광고에 그는 반문을 제기한다. 신 감독의 작품에는 뻔한 광고 문법이 없다. 광고계에서 그가 가장 뜨거운 이유는 뻔한 길을 선택하지 않아서다. 광고에서 주인공이 죽는 금기를 들고 나왔고 통상적으로 청춘물 장르로 통하는 웹드라마에 신 감독은 환경오염으로 폐허가 된 디스토피아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의 손길이 거친 광고와 영상에서 전통적인 결말인 클리셰가 깨지자 시청자는 열광했다. 캐논 광고 풀 영상은 조회 수 232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대박’이 났다. 웹드라마 ‘고래먼지’는 첫 에피소드 공개 이후 열흘 만에 조회 수 300만 회를 돌파했다.

“캐논 광고는 제주도에서 찍었는데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광고주가 처음에는 당연히 이해를 못했죠. 그래서 몰래 찍어두고 이를 현장에서 시연했어요. 보고 나니 설득이 된 거죠. 월요일 광고 론칭이라 금요일 오후에 이를 올려놓았는데 주말 사이에 온라인상에서 반응이 말 그대로 터졌죠.”

신 감독의 광고를 장르로 만든 것은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새로운 스토리를 가미하자 ‘바이럴’로 시청자가 먼저 알아봤다. 신 감독은 “영화가 돈을 내고 보는 것이라면, 광고는 시청자가 시간을 내고 보는 콘텐츠”라며 “시간을 지불하는 콘텐츠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했다.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


◇광고계의 ‘이단아’…“영업이 없기에 작품이 오로지 영업”=돌고래유괴단은 소위 말하는 ‘영업’이 없는 광고 제작사다. 학연·지연으로 똘똘 뭉친 광고 바닥에서 돌고래유괴단은 광고를 따내기 위한 어떤 영업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절반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요청이 쏟아진다. 지금 잘나가니 그런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돌고래유괴단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래서 돌고래유괴단은 광고 업계에서 ‘이방인’으로 통한다. 네트워크도, 자본도 없이 오로지 ‘콘텐츠’만으로 승부한다는 게 신 감독의 영업 방식이다.



신 감독은 고졸이다.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얘기하며 “가난 배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웃어 보였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도 한몫했지만 대학 진학의 이유를 스스로 설득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한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그는 대학을 가지 않는 대신 근처 도서관을 찾아 닥치는 대로 책을 봤다. 헤르만 헤세와 무라카미 하루키, 알베르 카뮈를 좋아했다. 20대 초반 군대 가기 전 친구의 부탁으로 독립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소설에서 영상물로 오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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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웃픈’ 얘기지만 영업을 하려고 해도 영업을 할 만한 인맥이 없었습니다. 결국 콘텐츠로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에 목맸던 것이죠. 콘텐츠가 돌고래유괴단의 영업이기에 어떤 쉬운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혹자들은 이미 성공했는데 좀 쉬어가도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작품이 언제나 ‘전선’에 있습니다.”

20대 초반 그 흔한 광고 제작 아카데미 수료 이력도 없는 그가 광고계에 뛰어들었다. 영상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친구 몇 명이 합류했다. 저렴한 월세 35만 원, 인하대 근처 옥탑방에서 영상에 ‘미친’ 이들은 합숙하며 영상을 만들었다. 동료이자 전우였다. 지금도 옥탑방 동료들 대부분이 함께하고 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옮겨 청년 사업가에 대한 서울시 지원을 받아 옛 마포구청사에 사무 공간을 마련했지만 제작비·월세 등을 빼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광고주는 아무도 찾지 않았고 팀원들 월급 등 고정비에 빚은 쌓였다. 20대 후반 3억 5,000만 원의 부채. 당시 신 감독의 성적표였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무명의 시간이 이어졌다. 광고 관련 학위도, 어떤 경험도 없는 그가 광고 바닥에서 겪는 시간은 처절했다. 어렵게 성사한 광고주와의 미팅에서 고졸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도 심심찮게 만났다.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신우석 돌고래유괴단 대표./권욱기자


돌고래유괴단은 당시에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웹드라마라는 용어가 없었던 2007년부터 웹용 저예산 드라마 시리즈물을 만들었다. 유행이 되기 위해서는 ‘한 발’도 아닌 ‘반 보’만 앞서라고 한다. 광고계에서는 “어쩌면 신 감독이 대세가 된 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한 발이 반 보가 되며 오히려 시대와 대중이 화답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자신을 ‘오기’ 인생으로 정의한다. 고졸 학력, 20대에 억 단위의 빚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신 감독은 “그때 오기였는지, 당시 나이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에도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며 “젊은 패기인지 오기인지, 돈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자주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창의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누구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알을 깨고 나와야 하지만 그 알을 깨는 방식은 수천·수백 가지로 어떤 왕도가 없다”고 말했다. 단지 ‘스스로’ 깨야 한다는 명제만 분명할 뿐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후배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는 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창의력을 주입식으로 가르쳐본 적이 있습니다. 소위 창의력을 ‘주입’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객기였죠. 결론은 사람마다, 감독마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답이 없어요. 분명한 것은 용기를 내야 하고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고래유괴단은 함께 일할 직원을 채용 중이다. 몇 년 전 채용 당시에는 축구 온라인 게임 피파(FIFA) 실력자 우대라는 문구로 화제가 됐다. 그는 “옥탑방 시절부터 함께했던 것처럼 직원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공유해야 하기에 피파 우대는 잔재미로 그만큼 시간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미한 것”이라며 “진짜 중요한 것은 철학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거기서 기존과 다른 스토리를 만들 준비가 돼 있냐는 것이 그의 기준인 셈이다.

He is △1982년 서울 △2007년 돌고래유괴단 설립 △2016·2017년 서울영상광고제 금상 △2018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뉴욕페스티벌 필름부문 동상, 칸국제광고제 필름부문 쇼트리스트 △2019년 서울영상광고제 심사위원특별상,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2020년 서울영상광고제 연출 부문 금상, 서울영상광고제 올해의 감독상, 대한민국 광고대상 대상

/김보리 기자 boris@sedaily.com


김보리 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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