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더드루 라스베이거스 호텔 건설을 위해 국내 대형 증권사 5곳과 기관이 제공한 브리지론(개발사업 초기 단기 자금대여) 3,000억원이 최근 전액 손실로 확정됐다. 투자자들은 주관사인 국내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원금 손실의 책임을 묻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국내 증권사의 불완전 판매 여부다. 주관사 측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사전에 설명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은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후 6개월이 지나서야 독소조항이 투자 계약 내 포함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내 투자자 발 묶인 'DIL 조항'은?
일반적으로 EOD가 발생하면 선순위 투자자들은 담보권 처분에 돌입해 경매 절차를 거쳐 자금을 회수한다. 잔여재산배분권(waterfall) 원칙에 따라 선순위 투자자가 우선되고 그 뒤에 중·후순위 투자자가 회수 기회를 갖게 된다. 부동산이 경매 매물로 나오면 시가에 비해 낙찰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순위가 낮을수록 회수 자금은 투자금 대비 낮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5월 EOD가 발생했던 더드루 프로젝트의 경우는 반면 경공매 형태로 자산을 처분하지 않았다. 채무자인 미국 현지 부동산 개발 투자 회사 위트코프(Witkoff) 그룹이 EOD 발동 시 행사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 사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DIL(deed in lieu) 조항이다. DIL을 선언하면 채무자는 선순위 채권자에 자산 소유권을 양도하고 빌려간 돈에 대한 상환 의무를 지울 수 있다.
EOD 발생 이후에도 빚을 갚지 못한 위트코프 그룹은 지난 11월 DIL을 선언하고 선순위 투자자에 호텔 소유권을 양도했다. 선순위는 도이치은행과 사모펀드 운용사 루벤브라더스 등 현지 대형 투자자로 구성돼 있었다. 선순위 대출금이 4,00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 투자자는 4,000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제3자에 호텔 소유권을 처분하면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더 드루는 올해 1월 기준 1조 2,000억 원의 감정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미국 대부호로 잘 알려진 찰스 코크의 코크인더스트리 측은 선순위 대출 4,000억 원을 포함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자산을 인수했다. (※관련 기사: 국내 기관 '전액손실' 美 더드루 호텔, 헐값에 현지 부호(富豪) 손에)
더드루 외에도 현지 시장에서 다수의 대규모 개발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위트코프 입장에서는, DIL을 선언해 타 사업장의 신용도가 연쇄적으로 하락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위트코프는 그동안 75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완료했지만 이 과정에서 디폴트 및 압류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더드루가 첫 디폴트 사례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이 조항 덕분에 오점을 남기지 않았던 셈이다.
◇ 투자자 "DIL조항 투자설명서에 기재 안 해" vs 주관사 "법률실사보고서에 적시"
DIL 조항의 고지 여부는 현재 국내 투자자와 주관사·운용사 사이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채무자인 위트코프 그룹에 상당 부분 유리했던 조건이 투자 계약에 포함돼 있었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이같은 사실은 투자 시점으로부터 2년 뒤에야 알게됐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핵심 투자 위험을 고지하도록 되어있는 투자설명서(IM)에 이 내용은 포함되지 않다는 점을 국내 기관들은 문제삼고 있다. 투자 심의 과정에서 기관들은 향후 EOD 사태 시 대응 방안에 대해 질의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주관사 측은 이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기관 측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투자 조건인데, 2018년 투자자 모집 단계에서는 물론 지난해 EOD 선언 후 6개월간 이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주관사들이 설명은커녕 사태 수습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들은 사전에 투자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다는 입장이다. 복수의 투자 관계자에 따르면 20여페이지에 이르는 법률실사보고서에는 DIL 조항이 담겨 있다. 다만 투자설명서에는 DIL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고, 주관사 측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주관사 측 핵심 관계자는 "투자설명서에는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포괄적으로 위험성을 고지했다"고 언급했다.
◇ ‘韓연합군의 한계' 증권사 간 이해관계 엇갈려…투자자 원금 3,000억 전액 손실
채무자인 위트코프 그룹은 미국 전역에서 호텔, 오피스 등 다양한 자산을 개발하고 있는 대형 부동산 업체로, 75건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단 한 번의 디폴트를 낸 적 없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받았다. 국내 대형 증권사 5곳과 현대차(005380) 그룹, 강원랜드, 중견기업, 언론사 등이 앞다퉈 투자한 배경이다. 미래에셋대우(006800)와 NH투자증권(005940), 하나금융투자 등 국내 증권사는 ‘투자 연합군’을 구성해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앞서 만기가 짧은 브리지론을 제공했고, 자기자본(PI) 투자도 단행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상품을 구조화해 PB센터 개인 고객들에게 판매했다.
지난 11월 위트코프 측이 DIL을 선언하면서 잔여재산배분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기관투자자는 뒤늦게 사태 파악과 수습에 나섰지만 자금 회수에 실패했다. 지난해 말 선순위 주관사 JP모건은 국내 투자자에게 자산 인수 기회를 제공했다. 투자자들은 호텔을 매각하거나 개장 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투자 금액을 두고 증권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기한 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3,000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조윤희 기자 choy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