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등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매우 악질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24일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의협에 따르면 운전자가 보행자의 무단횡단 등으로 의도하지 않은 사망사고를 낸 경우 재판부가 보행자의 책임, 원만한 합의와 피해자 유족의 선처 요청에 따라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의협이 온라인 포털에서 '금고형' '집행유예' 등으로 뉴스를 검색했더니 '무단횡단 90대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금고형'(2018.11), '왕복 9차로 건너던 보행자 치어 숨지게 해…금고형 집행유예'(2020.5), '전동킥보드 무면허 운전 중 행인 친 20대 금고형 집행유예'(2018.9) 등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횡단보도를 건너던 2세 어린이가 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에서 재판부는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면서도 피해자 유족이 피고인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금고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논란이 된 '민식이법'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와 관련해 운전자가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교통사고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생후 1개월된 아기와 놀아주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2018년 금고형이 선고됐다. 올 1월에는 술에 취해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일행을 밀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에게 뉘우치고 있는 점, 유족에 대한 배상이 진행 중인 점을 참작해 금고형이 내려졌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변호사)는 "금고형은 과실범이나 비(非)파렴치범에게 주로 선고된다. 법원에서는 주로 행위의 결과가 무겁더라도 의도적이지 않고 처리과정이 원만하며 정상을 참작하는 경우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어 금고형 선고가 악질적인 경우라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강병원·강선우·권칠승·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4개 의료법 개정안을 통합·조정한 대안을 의결,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 범죄행위에 성폭력범죄·특정 강력범죄만 추가한 법안도 있었지만 대안은 면허취소 대상을 모든 금고 이상의 형으로 확대했다.
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개정 법 시행 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유예·집행유예받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은 각각 선고유예기간, ‘집행유예기간+2년’ 동안, 형이 집행된 의료인은 집행종료 후 5년 동안 취소된 면허를 재교부받지 못한다. 또 금고 이상의 형으로 2차 면허취소 땐 10년 동안 재교부 금지, ‘1차 면허취소+재교부’에 이어 자격정지 사유 행위 땐 면허취소(현행대로 최장 3년)라는 제재를 받게 된다. 변호사·법무사·공인회계사 등의 면허취소 사유와 같다. 다만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위험한 수술 등을 하다가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의료인은 면허취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대해 의협이 크게 반발하자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22일 브리핑에서 "교통사고로 실형이 나오는 건 매우 악질적인 경우 외에 드물다"며 "일반 교통사고로는 사망사고조차도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의료법 개정안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산 후 미복권자 등을 면허취소 사유에서 제외하는 등 변호사에 비해 면허취소 기준이 낮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오랜 기간 숙의하고 여야가 합의했다”며 “(이를 이유로 의사들이 정부의 코로나19 접종사업 참여를 거부하는 등) 불법적 집단행동을 한다면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정부 관계자가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살인·성폭행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모든 금고형 선고·집행유예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임웅재 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