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제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증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의 역사를 보면 정책 입안자들은 “내 생각이 옳다”는 아집으로 측근들과 정책을 밀어붙이다 도그마에 빠지곤 했다. 이들의 판단 실수는 ‘집단의 오류’가 돼 국가 전체에 회복하기 힘든 위기를 불러왔다.
우리는 어떤가. 외환위기 이후 관료 사회, 특히 금융 정책을 실행하는 ‘모피아’의 위세는 더욱 공고해졌다. 다른 나라는 정책 오류에 대해 되새김이라도 했다지만 우리 관료들은 환란에 대한 반성은커녕 일선 금융인들과 결탁해 힘을 키워나갔다.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사단’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 등 줄줄이 ‘동맹’이 생겨났고 이는 거대한 권력으로 변해갔다. 세인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들만의 리그’이자 심하게 표현하면 ‘패거리 금융’과 다를 바 없었다.
금융 관료들이 오랜 세월 햇볕 따뜻한 곳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탁월한 능력도 있었지만 원인을 제공한 것은 금융인 스스로였다. 개발 도상 시절에는 정책 금융의 필요성 때문에 은행원들이 관료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뱅커들은 실력을 키우는 대신 경쟁자의 흠결을 찾아내 청와대와 당국에 투서하기에 바빴다. 은행 경영은 위기가 와도 ‘예대 마진’이 젖줄처럼 받쳐주니 걱정할 것이 없었고 행장과 상층부 인사들은 권력의 눈치만 보면 됐다.
허약한 지배 구조의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몰골은 은행 고위층에도 롤모델이 됐다. 오너가 없는 금융회사에서 회장이나 행장에 일단 오르고 나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정권의 실력자, 관료들과 기생하면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별한 경영 능력이 없고 대형 금융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자리를 내놓으라는 사람이 없으니 그야말로 ‘꽃 보직’이었다. 낙하산 방식을 터득한 은행들은 거래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면서 퇴직 임직원들을 감사로 보내는 기술을 발휘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 수준의 자산 운용 능력이 길러지기를 바라고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을 외쳤으니 낯이 뜨거워진다.
정치인들이 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금융회사의 곳간을 털겠다고 나서고 민간이 주인인 시중은행에 배당 축소를 요구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은 우리 금융 산업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이 돈을 내 만든 유관 협회에 10년 전 장관을 지낸 인물이 정권 실세의 연줄을 타고 들어와도 저항의 몸부림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실상이다. 관료들은 결점투성이인 금융회사를 상대로 온갖 명분을 들이대며 규제의 틀을 변화시키고 회계 기준을 바꿨다. 로펌과 회계법인들에 새로운 법규는 좋은 일거리가 됐고 후배들이 주는 규제 선물은 이곳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퇴직 관료들의 체면을 톡톡히 세워줬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빅테크 기업의 정보 관리를 놓고 빅브러더 논란까지 일으키며 볼썽사나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은 ‘짬짜미 금융’의 변형된 버전이다. 멋진 수사로 자신들이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지만 한 겹만 벗기면 신생 먹자골목의 대장 노릇을 하겠다는 욕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데 불과하다.
모든 금융위기는 탐욕과 공포가 결합돼 발생했다. 비트코인 광풍으로 이어진 지금의 버블은 욕심의 극단을 보여주지만 거품이 꺼질 때 파멸의 변주곡은 어느 때보다 요란할 것이다. 위기가 현실로 닥쳤을 때 우리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과연 금융회사들을 구제하겠다고 나설까. 그들은 부실의 썩은 냄새가 나는 은행에 책임을 묻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가장 먼저 달려들 것이 뻔하다. 환란 이후 23년이 흐르도록 세계 무대에 내놓을 자산운용사 한 곳도 길러내지 못한 채 실력자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우리 금융 산업의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young@sedaily.com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