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하루 동안 부산 부전역에 이어 가덕도 신공항 부지와 부산 신항까지 방문하는 등 다소 이례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40여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현장 행보가 이처럼 온통 부산에 집중되면서 ‘대통령의 선거 유세’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부산·울산·경남의 자족적 생활권 구축을 위한 ‘동남권 메가시티’의 전략을 점검하는 일정이라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부산에 쏠린 문 대통령의 발길은 결국 ‘부산 표심’ 공략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까지 대동하면서 부처로부터 문제점을 지적받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힘을 실어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25일 부산 부전역에 이어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 부산 신항을 둘러본 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15년간 지체되어 온 동남권 신공항 사업부터 시작하겠다”며 “묵은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처리를 공언한 가운데 여당을 측면지원한 것이다. 이날 현장에는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출동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변창흠 장관과 문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이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한 것은 대통령 당선 후 이번이 처음이다. 취임 후 첫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의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이었나’라는 비판이 따라 붙는 이유다. 특히 국민의힘은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수세에 몰린 여당을 지원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는 ‘선거용 행보’라는 야당의 공세를 일축했다. 지난 해부터 이어온 한국판 뉴딜 현장 방문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기획한 지역균형 뉴딜 일정”이라고 반박했다.
가덕도 신공항이 ‘육(철도)-해(항만)-공(공항)’으로 이뤄진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의 한 축인 만큼 가덕도를 빼놓고 이번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판단도 읽힌다. 동남권 메가시티는 부산·울산·경남의 자족가능한 생활권 형성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총집결한다는 개념으로 가덕도 신공항은 그 수단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누가 봐도 대통령의 도 넘은 선거 개입”이라며 “선거 개입을 중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며 “노골적 선거 개입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도 날을 세웠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 부산에 간 것은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를 이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 대놓고 ‘관권 선거’, ‘선거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의 불법 공작 선거 습성이 또 발동했다. 3년 전 울산시장 선거 공작 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 등과 자리를 함께 한 데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이번 일정은 ‘울산 선거’로 재판받고 있는 송 시장, 드루킹 대선 여론 조작 의혹으로 2심에서 실형 유죄를 선고 받은 김 지사 등 피고인들과 같이하는 아주 볼썽사나운 일정”이라고 쏘아붙였다.
가덕도신공항의 허점을 지적한 국토부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국토부는 이달 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가덕도 신공항이 당초 부산시가 밝힌 7조원보다 4배 많은 28조원 이상 소요되며 환경 피해가 막대하다는 등 각종 문제점을 짚었다. 정부는 국토부의 문제 제기 후 정부가 조율된 의견을 수립했다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된 국토부 보고서는 가덕도 신공항의 갖가지 문제를 노출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도강하게 반발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사업성은 물론이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마저 무시하며 추진하는 토건사업이 MB정권의 4대강과 다를 게 무엇이냐”며 “선거를 위해, 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은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고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몰아붙였다.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