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수사·기소 분리, 세계적 추세? 역행?…주요국 중대범죄 수사 현황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같은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지 아닌지를 두고 연일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박범계 장관은 대전보호관찰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수사와 기소는 전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분리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이와 인식을 같이 하는 모양새다.

이틀 뒤 검찰에서는 반박이 나왔다. 지난 26일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수사와 공소의 분리가 세계적 추세, 아닙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오늘날 대다수 국가에서는 초기부터 검찰이 수사에 개입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지고 있으며 특히 사기, 부패범죄 등 복잡한 사건에서 두드러진다”는 내용이 있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가 2014년 발간한 형사사법 핸드북 시리즈의 번역문을 제시했다.

그러자 이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수사 기소 분리가 오히려 세계적 추세에 역행?’이라는 글을 올려 “수사권도, 기소권도 권력분산과 전문성 차원에서 자꾸 분산되어 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검, 주요국 중대범죄 수사 동향 분석

이렇게 논박이 오가는 가운데 미국·영국·독일·일본의 중대범죄 수사에 대한 조사 결과가 담긴 문건도 나왔다. 구승모 대검찰청 국제협력담당관이 지난 26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주요 각국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 글에 첨부된 문건이다. 문건 작성자는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이다.

본지가 해당 문건들을 입수해 살펴보니 미국·일본·독일의 검찰의 중대사건 직접수사와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의 직접수사 사례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이 문건은 전국 검사들이 수사청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는 데 참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대검이 수사청에 대한 의견을 준비하는 데도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추 전 장관은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에서 “미국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만을 담당하고 수사는 경찰이 한다” “영국도 1985년 검사 제도를 도입하여 경찰에합되어 있던 수사·기소를 분리하여 경찰이 수사주재자이고 검사는 기소여부만 결정하며, 경찰 수사에 조언을 한다” “독일은 검찰에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수사관이 없다” 등을 주장한 바 있다. 검찰에서 조사한 내용은 추 장관의 주장과 결이나 맥락에서 차이가 있다. 아래에서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연방·주·지방 검찰청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크게 연방검찰청과 주검찰청, 지방검찰청으로 나뉜다.

연방검찰청의 연방검사들은 연방수사관과 함께 직접 수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문건은 “미국 연방검사는 중대사건에 대해 연방수사관들과 수사 개시 시부터 함께 수사 전략까지 긴밀하게 협력하는 방법으로 직접 수사한다”며 “복잡한 중대범죄에 있어서는 증거 수집 기능과 공소유지 기능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와 기소의 유기적 통합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연방검찰청의 대표적인 인물은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연방검찰청 검사장이다.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검사장을 지냈다. 그가 쓴 ‘Doing Justice’는 지난해 말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로 번역됐다.

주검찰청은 지방검찰청에서 취급하기 어려운 복잡한 범죄들을 관할한다고 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주검찰청에는 약 500명의 수사관들이 주검사들의 지휘를 받으며 첨단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등 다양한 직접수사를 하고 있다는 게 대검의 조사 결과다. 앤드루 쿠오모 현 뉴욕 주지사가 뉴욕주 검찰총장 출신이다.



지방검찰청의 경우 별도의 수사국을 두고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을 검찰청에서 직접 인지하여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경찰에서 송치하는 사건들도 중요하고 복잡한 사건들은 경찰수사 초기부터 주임검사를 정해 수사부터 공판까지 수직적으로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는 게 대검의 설명이다. 맨하탄지방검찰청에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직접수사하는 검사가 80여명 이상 근무하며, LA카운티검찰청에서는 약 300명의 수사관들이 근무하며 복잡한 사건들을 담당하여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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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검찰청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버트 모겐소 맨하탄지검 검사장이 있다. 그는 직선제인 맨하탄지검에서 1975년부터 2009년까지 9차례 당선됐다. 재임 기간 동안공직부패범죄, 중대경제범죄, 조직범죄 등에 대한 적극적인 검찰 직접수사를 촉구했으며 중대범죄에는 경력 검사들이 수사의 처음부터 재판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수직적 기소‘로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 SFO

영국에서 중대범죄를 직접 수사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SFO다. SFO는 1988년 지능화·조직화된 경제·부패 범죄를 수사·기소하기 위해 창설됐다.

원래 영국에선 경찰이 수사·기소·공소유지 권한을 다 갖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985년 권한 집중의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검찰을 창설해 공소유지를 맡겼다. 2000년에 들어서는 경찰의 기소권도 검찰에 이관했다. 이런 와중에 중대범죄의 경우 한 기관에서 유기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SFO를 만들어 수사·기소를 다 맡도록 한 것. 1986년 당시 형사사법 시스템을 연구한 ‘로스킬 보고서’(The Roskill Report)에서 이 같은 기관 설립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 보고서는 “수사 단계에서 신문 내용 구성에 개입한 사람이 기소를 담당해야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기소와 재판 준비 과정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SFO 홈페이지 소개글에는 “SFO는 담당 사건에 대한 수사 및 기소를 모두 담당한다는 점에서 영국 사법제도의 예외에 해당한다”며 “이는 담당 사건 유형의 특성상 사건 초기부터 검사와 수사관의 협력 필요성에 따라 이와 같이 설계됐다”고 나온다.

대신 SFO 내에선 수사검사,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수사팀과 공소검사를 나누고 있다. 다만 양 측은 수사 초기부터 긴밀히 협력한다. 공판검사가 수사 개시부터 수사 회의에 참석하여 수사팀에 의견을 제시하고, 법원에 제출할 증거를 미리 수집하고 정리하는 식이다. SFO이 수사한 대표적인 사건은 롤스로이스 뇌물 사건, 에어버스 그룹 사건 등이 있다.

◇독일 검찰

독일의 경우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고 있다. 다만 검찰이 수사의 주재자로서 수사개시권과 지휘권, 종결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게 문건의 설명이다. 문건은 “경찰은 조사를 수행할 뿐이지 모든 수사사항은 검사가 모두 검토하고 결정한다”면서 “경찰은 검찰의 지시에 복종의무가 있어 사실상 ‘검찰의 팔’로서 수사한다”고 했다. 이중에서 중대사건은 수사 착수 단계부터 경찰을 직접 지휘하는 형식으로 수사에 깊이 관여한다는 설명이다. 이때 피해자와 참고인 신문도 검사의 지휘 등을 거친다고 한다.

또 독일에는 중점 검찰청 제도가 있다. 이는 공직비리, 경제사범 등 중대범죄에 대해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 위함이라는 게 문건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49개 중점검찰청이 설치됐다고 한다. 문건은 “복잡한 중대범죄에 있어서는 증거수집 기능과 공소유지 기능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와 기소의 유기적 통합을 추구한다”는 설명을 붙였다.

중점검찰청에는 검사의 수사를 보조하는 경제연구원 등 인력이 배치된다. 또 경찰관, 공무원 등도 파견을 받는다. 이외 지역 검찰 중에서는 베를린 지방검찰청이 부패범죄전담부, 경제부 등 설치하여 직접 수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폭스바겐(VW)·아우디 디젤게이트 사건이 독일 검찰의 직접수사 사례다.

◇일본 검찰

일본 검찰의 경우 특별수사부 3곳, 특별형사부 10곳 등에서 직접수사를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 법무성 홈페이지에는 “검찰청의 중요한 일 중에 독자수사가 있다”며“이것은 검찰청 스스로 검거적발하여 행하는 수사로 정치가 등에 의한 오직(汚職) 사건, 법률과 경제에 대한 고도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기업범죄 등에 대해 행해진다”는 설명이 있다. 이어 “이러한 정치, 경제의 어둠에 숨어있는 거악을 검거, 적발하는 것은 각 계의 자정작용을 촉진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건전한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검찰의 직접수사는 주로 정치인, 공직자 등의 뇌물수수 등 부패범죄, 기업범죄 등에 대해 수행한다. 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증권거래감시위원회 등 정부 기관의 고발 사건에 대해서 진행한다. 각 기관이 발견한 혐의에 대해 검찰청이나 검사총장에게 고발하도록 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일본 검찰의 대표적인 직접수사 사례로는 도쿄지검의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 사건이 있다.

◇"주요국, 중대범죄에는 수사·기능 통합 노력"

구 담당관은 이 문건들을 올리며 “수사는 수사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적법하게 취득하여 재판을 통해 유죄선고를 받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복잡한 중대범죄의 수사에서는 수사단계부터 공소유지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지 않으면 당연히 유죄선고를 받기 어려워진다”며 “그렇기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중대범죄에 있어서는 최대한 유기적으로 수사와 기소 기능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요약했다.

구 담당관은 “부디 국가의 형사사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논의를 함에 있어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하여 중대한 논의가 성급히 결정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글을 끝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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