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102주년 3.1절을 맞아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일 오전 10시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3.1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며 발전적 한일 관계를 위한 대화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지난해 3.1절 기념사보다 많은 부분을 한일 문제에 할애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한·미·일 삼각 공조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다"면서 한일 문제에 대해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은 "오늘은 그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날"이라면서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 문제와 관련해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전반적으로 한일 관계의 '발전적 미래'에 방점이 찍혔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됐다"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해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보복성으로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가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이라며 "한국은 과거 식민지의 수치스러운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수습해야한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사를 경제 등 일본과의 협력 분야와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는 기존의 투 트랙 전략을 언급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론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협력으로 호혜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할 때"라며 "이웃나라 간의 협력이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3·1독립선언서는 일본에게, 용감하고 현명하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며 "우리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과 마주 앉을 계기로 올해 예정된 도쿄 하계 올림픽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면서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아가 한일 양국이 코로나로 타격받은 경제를 회복하고 더 굳건한 협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