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 세기의 경매, 불멸의 디자이너






그는 일에 투신해 죽을 때까지 그 순간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작업이 순간의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행할 뿐이었어요. 프루스트는 자신의 방에서, 플로베르는 크루아세에서, 자신들의 작품이 지닌 불멸성과 상관없이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했습니다. 중요한 건 오직 행동뿐이었지요. (…)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불가능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었고, 행동하기에 앞서 방해물을 먼저 보는 이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방해물을 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가장 말도 안 되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죠. 우리는 진정 미치광이들이었으니까요. (피에르 베르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2021년 프란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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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의 죽음 이후 그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생로랑의 소장품을 경매에 부쳐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다. 이 소장품들의 총 낙찰액은 무려 7,000억 원에 달했다. 피에르 베르제는 ‘세기의 경매’로 불렸던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매를 준비하면서 세상에 없는 이브 생로랑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고 신뢰했던 이의 물건을 타인에게 넘겨버리기 위한 정리와 버림의 시간, 그는 오히려 집요하게 이브 생로랑과의 순간과 기억을 그러모은다.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이 편지 속에서 편지의 수신자인 이브 생로랑은 살아 있다. 살아서 지독하게 일하고 싸우고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중독되고 치유되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던 위대한 디자이너의 경이로운 기억과 충격적인 순간이 영화처럼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가 끝내 깨닫게 되는 것은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이들은 아름다움에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불가능한 꿈과 아름다움을 눈앞에 현실로 펼쳐내는 일이었다. 이브 생로랑의 몸은 죽었지만 그의 이름과 디자인은 불멸할 것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꿈’을 삶에 입혀주는 디자이너였기에.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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