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국내 업체가 개발한 특수 주사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인원을 1병당 1~2명 늘리는 도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가운데 의료 현장은 기대감보다 혼란에 휩싸였다. 시작은 지난달 27일 질병관리청이 일선 의료 기관에 “최소 잔여형 멸균 주사기 사용 시 접종 후 1병당 잔여량이 있으면 현장 판단에 따라 추가 접종을 할 수 있다”는 공문을 내려보내면서부터다.
문제는 ‘현장 판단에 따라’라는 문구였다. 접종 인원을 늘리자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하면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의료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화이자 백신의 경우 특수 주사기를 정확히 활용하면 최대 7회까지 접종이 가능하지만 6명 분량을 부정확하게 추출하면 7번째 환자는 충분한 양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접종자 수를 최대치로 정해놓고 빡빡하게 진행하면 의료진의 피로감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논란이 일자 전날 정은경 질병청장은 “무리하게 접종량을 늘리는 것을 의무화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잔여량 사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지침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정 청장의 해명 이후에 즉각 “방역 당국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또는 방역 당국이 의료진에 판단을 미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결국 접종을 보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는 했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접종 여부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령자 접종 여부를 의사 판단에 맡겼고 의사들 사이에서는 “책임 전가”라는 반발이 거셌다. 코로나19 위기 초반이던 지난해 2월에는 코로나19 진단 검사 대상을 대폭 확대하면서 “일선 의료진은 자체 판단에 따라 감염이 의심될 경우 해외 여행력과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면서 의사에게 재량권을 줬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우리도 모르는 감염병인데 어떻게 판단하라는 거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현장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컨트롤타워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K주사기든 고령자 접종 여부든 방역 당국의 명확한 입장을 기다려본다.
/이주원 기자 joowonmai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