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수학 5시간, 물리 6시간을 공부하는 소련 학생과 수학 1시간, 물리 2시간을 공부하는 미국 학생 중 누가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겠는가? 1950년대말 미국 중고등학교에 걸린 한 포스터의 내용이다. 자연과학을 더 열심히 하자는 말인데 이런 교육 개혁을 가져온 것은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때문이었다.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자부심을 무참히 뭉개버렸다. ‘스푸트니크 쇼크’라 불리는 충격이 미국에 가해졌고 그 후 미국은 여러 개혁을 통해 결국 인간 달 착륙에서 소련을 앞서게 되고 그 이후 우주개발 최강국이 됐다.
위기는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된다.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우리 보험산업은 어떤 위기를 통해 성장했는가.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망스럽기도 하다. ‘이차역마진’이라는 단어는 십여 년째 반복되고 있다. 설계사의 자질 문제와 민원은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덩치만 커졌지 실속이 없다는 가혹한 평가도 내려진다.
되돌아보면 우리 보험산업에 질적 성장의 기회로 삼을 만한 두 차례의 큰 위기가 있었다. 먼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로 금융산업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다. 이때 외자계인 P생명은 대졸남성 설계사 조직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소비자 신뢰를 쌓으면서 보험판매업의 위상을 전문업 수준으로 높였다. 그러나 타 보험사들은 전문 판매조직을 양성하기 보다는 타사의 조직을 스카웃하는 등 장기적인 투자 대신 단기적 전략으로 대응했다. 한국의 설계사 조직이 전문화되고 산업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상황이 됐다.
다음은 2008년 금융위기로 저금리가 본격화됐을 때다. 저금리는 곧바로 보험사 재무건전성의 위기로 다가왔고, 이는 보험사 경영의 혁신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상품설계, 지배구조, 위험관리체계 및 자산운영전략 등에 대해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장기투자 확대, 예정이율 인하, 보장성보험 확대 등 저금리 대응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보험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만한 혁신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금리가 오르고 있는 듯하다.
위기를 신뢰와 산업 건강성 회복의 기회로 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자 신뢰는 여전히 비판받고 있고, 다수의 외국계 보험사는 떠나고 보험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보험산업은 IFRS17 도입, 빅테크의 보험업 진출로 또 다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초 “보험산업 신뢰와 혁신을 위한 정책방향”을 발표하고 보험산업 혁신성장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근본적인 교육제도부터 개혁하면서 우주산업을 키운 것처럼 지난날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근본적인 개혁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보험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