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이 있는지 재수사하라’며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건 취임 이후 처음이다. 해당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대검찰청 판단을 뒤집은 만큼 법무부·검찰이 재차 갈등 국면에 돌입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장관은 17일 대검이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하는 과정에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있었다며 ‘대검 부장회의를 열고 관련자들의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라’고 수사를 지휘했다. 한 전 총리 재판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고 지목된 재소자 김모씨에 대한 혐의 여부와 기소 가능성을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오는 22일까지 다시 조사하라고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시한 것이다. 또 대검 부장회의에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에게 사안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지시 사항에는 한 전 총리 사건 당시 위법한 수사 관행에 대한 합동감찰 실시도 포함됐다. 한 전 총리는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5년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한 전 총리를 직접 만나 돈을 줬다고 했다. 이후 재판에서는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대검 감찰부는 사건 수사팀이 위증을 강요했는지 살펴보고, 5일 무혐의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예정된 수순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법무부가 직접 한명숙 사건 수사에 투입한 임 연구관(부장검사)과 한 감찰부장이 이 사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임검사인 허 감찰3과장이 조남권 검찰총장 대행에게 직접 결재를 받고 무혐의 결정이 났다. 특히 대검의 무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 수사지휘이나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검 부장단이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이나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등 친(親)정부 인사로 구성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박 장관은 수사지휘서에서 “감찰부장과 임 검사가 최종 판단에 참여하지 않은 채 결론을 내려 적정성이 의심받는다”며 두 사람 의견을 적극 수용하라는 뜻도 내비쳤다. 대검 부장단에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감찰부의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문재인 정부 들어 법무부와 검찰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총장 사건 지휘 배제 등 앞서 두 차례 수사지휘권 발동에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는 윤 총장 징계까지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지검·지청에서 평검사회의가 열리는 등 ‘검난’으로까지 번진 바 있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양측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종곤·손구민·구아모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