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방한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첫 대면 자리에서 대북정책 관련 발언 수위를 낮추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이와 같은 접근법을 “현명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후 정의용 장관과 예정된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대북정책을 언급할 전망이다. 다만,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동맹국의 협조를 요청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안보협의위원회(2+2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압박 조치' 또는 '외교적 시도'를 취할지 여부를 아직 검토하고 있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을 다루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살펴보고 있으며, 동맹국들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방침만 강조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노동신문에 개인 담화를 내고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해 “앞으로 4년 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 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센 수위의 발언이 나오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오히려 대외 메시지 수위를 낮추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16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블링컨 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심상치 않은 성공을 거뒀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글렌 밴허크 미 북부사령관은 청문회 이날 서면 답변을 통해 “김정은 정권은 핵으로 무장한 ICBM으로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에서 심상치 않은 성공(alarming success)을 거뒀다”고 밝혔다. 북한이 2020년 10월에 지난 2017년 당시 시험한 것보다 “상당히 크고 아마도 더 역량을 갖춘” 신형 ICBM을 공개해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NBC 방송은 16일(현지시간) 현직 고위 당국자 3명과 전직 고위 당국자 1명을 인용해 지난 2월 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참모 회의에서 북한에 대한 공개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어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즉,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참모들은 북한이 아직 물리적인 도발을 하지 않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날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17일 각국 은행 해킹을 주도한 북한 해커 3명에 대한 기소 사실을 밝히면서 북한을 ‘국기 달린 범죄집단(criminal syndicate with a flag)’라고 표현한 데 대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며 항의했다. 나아가 백악관 참모들은 ‘배를 흔들지 말라’는 북한 접근법이 결정된 지 불과 며칠 만에 미 법무부가 북한을 ‘범죄조직’으로 칭한 데 대해 ‘발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인 만큼 북한에 대한 자극을 자제하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억지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VOA 보도에 따르면,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북한이 내부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8차 당대회에서 밝혔듯 대미 위협을 키우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이미 정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기조에 대응해 “방어적이고 (대북) 억지에 집중한 접근법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역시 “(북한은) 도발 당하길 기다리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 검토를 하는 중에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김혜린 기자 r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