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다주택자 투기꾼 몰아 시장 왜곡…‘정치 위한 정책’으로 4년 허송세월” [청론직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자본 이득 등 시장경제 이해 못하고 다주택자 죄악시

주민 빠진 공공 주도 도시 재생은 ‘마을 만들기’ 불과

투기 온상 알면서도 방치한 정부가 ‘LH 사태’ 더 키워

12년 된 종부세 기준 바꾸고 공시가 속도조절 필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2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2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주택자가 가진 집을 내놓으면 집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착각한 정부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강행해 시장을 왜곡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문재인 정부가 25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집값, 전월세 가격이 모두 급등했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부동산 시장은 불안한 상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태가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투기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게다가 집값 급등과 공시 가격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이 증가하는 데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인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를 29일 만나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 LH 사태의 원인과 해법 등을 들어봤다. 권 교수는 “정부가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모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시장을 왜곡했다”며 “정치를 위한 정책으로 4년 가까이를 허송세월했다”고 비판했다. LH 사태에 대해서는 “토공과 주공의 합병 이후 비리가 만연해 있던 상태”라며 “LH가 투기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부동산 전문가가 없다. 둘째, 정부는 그동안 제시한 부동산 대책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를 위한 정책, 표를 의식한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나라들에서는 주택을 n분의 1로 나눌 수 없다. 분명히 가수요가 있기 마련인데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 등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강행해 시장을 왜곡시켰다.

-정부는 그동안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고 주장해왔는데.

△그렇지 않다. 서울에는 주택 공급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다주택자를 포함하면 서울의 주택 공급이 96%까지 된다. 하지만 실질 주택 공급을 봐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2018년 기준 자가 주택 점유율(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42.8%, 자가 주택 보유율(자기 집에 살거나 나가서 전세로 사는 비율)은 49%다. 절반가량이 자기 집을 갖고 있지 않다. 다주택자가 가진 집을 내놓으면 집이 모자라지 않고 충분할 것이라고 정부가 잘못 생각했다. 이런 착각에 빠져 다주택이 많은 서울 강남을 타깃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무슨 착각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가령 옷이 아무리 많아도 대다수 소비자들은 신상품을 원하게 돼 있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낡은 아파트·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에 거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새 아파트 가격이 비싼 것이다. 이에 따라 멸실 주택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택 공급이 꾸준히 증가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주택이 한 번 공급되면 영원히 가는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 게다가 정부는 다주택자들을 투기꾼으로 봤다. 한 가족인데 왜 집 두 채가 필요하냐며 죄악시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는 다주택자 중 전세를 놓거나 자본 이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3년 반 이상 주택 공급이 없었던 여파가 지금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뒤늦게 깨달았는지 최근 대규모 주택 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에 공급된 가구 수가 29만 2,000채였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서울에 오는 2025년까지 32만 3,000채를 공급한다고 한다. 1기 신도시보다 더 많은 규모다. 여기에 수도권 공급 주택이 60만 채 가까이 된다. 또 지난해 6·17 대책에서 임대 사업자 혜택을 축소해 그로 인한 물량이 내년부터 매물로 나올 수 있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내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급하더라도 입주 시기를 조절하는 등 탄력적인 스케줄을 짤 필요가 있다.

-신도시 조성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처음부터 계획적·체계적으로 ‘콤팩트 시티’로 조성하지 못하면 난개발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1960~1970년대에 개발됐다가 지금은 슬럼화한 일본 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신도시 주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지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정말로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희망하는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도심지를 원하면 도심지 고밀도 개발을 허용하는 게 필요하다. 국가 경제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지수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판단해봐야 한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슬럼화한 도시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새롭게 바꿔주는 게 도시 재생이다. 주거지·상업지·공업지 등을 리모델링하거나 재건축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 게 도시 재생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 재생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주민들은 뭘 했는지 느끼지 못하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도시를 재생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참여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주민들이 배제된 도시 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여전히 공공 주도 개발을 고집한다.



△공공 주도로 추진하려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민간도 똑같이 할 수 있다. 공공이 할 수 있는 것을 민간에 그대로 넘겨주면 된다.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주도할 수 있게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주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투기 수요를 차단할 수 있도록 거주 기간 제한 등 최소한의 조건만 제시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가 시장을 끌고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시장을 끌고 가려 한다.

관련기사



-LH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LH가 2009년 합병한 뒤 규모가 방만하게 커졌는데도 내부 비리를 조사한 적이 거의 없다. 비리가 만연한 상태였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로 LH가 투기의 온상이란 것을 알면서도 조사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키웠다. 1·2기 신도시 조성 때도 투기로 조사·처벌 받은 사례가 수천 명에 달하는데 이번에는 20여 명만 적발했다고 했다. 말이 안 된다. 이러니 4월 보궐선거를 의식해 빨리 덮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이번에 투기 의혹 대상자가 5,000명 이상 나올 수 있다.

-정부가 투기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LH 사태는 현 정부가 정의·공정 사회 건설과 적폐 청산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실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정말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LH 사태의 실타래를 잘 풀어야 한다. 정부 대책의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선거용 엄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쾌도난마’ 식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내부의 적폐를 도려내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비리 의혹이 있는 사람의 직계 존비속은 물론 방계 혈족으로까지 조사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공직 비리 청산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LH 비리를 청산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직 축소·해체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LH 기능을 축소하겠다는 구상은 잘못됐다. 해체도 답이 아니다. 해체하면 120조 원이 넘는 빚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없도록 예전처럼 분리해야 한다. 택지를 개발하는 택지공사와 건물을 짓는 주택공사로 나누고 이와 함께 임대주택 증가 추세를 고려해 이를 관리하는 한국주택관리공단, 도시 슬럼화 대책을 전담하는 도시재생공사 등을 두는 등 4개 정도로 분리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으면 된다.

-주택 공시지가 산정을 두고 논란이 크다.

△공시지가 현실화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여야 한다. 현재 70.1% 수준인데 현실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렵고 국민들의 세금은 점점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공시지가 상승에 연동해 보유세를 낮춰주는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 공시지가가 20% 올랐으면 보유세를 15% 인하해주는 식이다. 또 공동주택 공시 가격 산정을 현재 부동산원이 하고 있는데 잘못됐다. 전문 감정평가사가 공시 가격을 산정하는 게 맞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많지 않은 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세금의 비율은 회원국 가운데 상위권이다. 2009년에 정해진 후 12년째 그대로인 고가 주택 9억 원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올 2월 말까지 서울의 평균 집값 상승률은 65%가 넘는다. 심지어 두 배가 넘는 지역도 있다. 이런 부동산 시장의 사정을 고려해 고가 주택의 개념을 바꿀 때가 됐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부과 기준을 지금보다 1.5~2배 올릴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C학점도 주기 힘들다. 잘해야 D학점이다. 3년 넘게 전혀 공급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공급을 늘린다면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

He is...

195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감정평가 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톰슨뱅크워치 자산관리본부장, 레피드코리아 대표를 지내는 등 20여 년간 부동산 실무 경험을 쌓았다. 부동산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각각 건국대와 강원대에서 받은 뒤 2005년부터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17·18대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부동산학회 이사장과 한국부동산융복합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부동산학 개론’ ‘도시 재생의 이해’ 등 10여 권이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