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내놓은 ‘강력한 투기 근절 대책’을 뜯어보면 사실상 부동산 시장을 옥죄는 대책만 가득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정부가 개발을 주도하면서 너무 큰 권한을 갖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반대 해법으로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벌어진 문제를 더욱 큰 개입으로 막겠다는 식이다. 한 예로 부동산 실거래 해제 미신고 과태료가 현행 10만~3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상향된다. 부동산 빅브러더(거래분석원) 설립이 기정사실화됐고 분양권 불법 전매시 매수자도 처벌 받는다.
◇거래분석원 설치·처벌 강화…정부 투기대책 보니=29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은 부동산 투기 발본색원과 정부의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4대 영역에 걸친 20대 과제를 제시했다. 큰 틀에서 정부의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두고 대규모 택지지정 전후로 각종 시장 거래를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식이다. 정부가 비밀리에 대규모 택지를 지정하고, 민간의 자율성보다는 공공 권한을 키우는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되 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모든 거래를 들여다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예방-적발-처벌-환수’로 이어지는 부패 척결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우선 ‘빅브러더’ 논란을 빚은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신속하게 출범하기로 했다. 부동산 시장 이상 거래와 교란 행위를 찾아내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민감한 개인금융·과세 정보 등을 모두 들여다볼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관련 법(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 전까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을 우선 출범하기로 했다.
대규모 신규 택지지정 때에는 발표 전후로 투기 의심이 있는 토지를 선별해 거래 내역 등을 정밀 조사하기로 했다.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을 통해 부동산 거래량을 조회해 단기 거래량이 크게 늘었거나 지분 쪼개기 거래, 특정인 집중 거래(과다 보유) 등이 나타날 경우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의혹이 있을 만한 필지에 대해서는 아예 기획조사 방식을 적용해 기획부동산이나 상습 투기자 등을 색출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분석원이 투기 의혹 필지를 선별하고 국세청·수사기관에 넘기면 이들 기관이 자금원 추적 등을 통해 범죄·탈루 혐의를 뒤지는 식이다. 특히 시장교란 행위 중 ‘4대 시장 교란 행위’를 선별하고 부당 이득액에 비례해 가중처벌하기로 했다. 정부가 정한 ‘4대 교란 행위’는 △비공개·내부정보 활용 투기 △가장 매매, 허위 호가 등 시세조작 행위 △허위 계약 신고(신고가 계약 후 취소 포함) 등 불법 중개 및 교란 행위 △불법 전매 및 부당 청약 행위 등이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거래를 한 경우 처벌 대상을 확대하고 분양권을 불법 전매한 경우 매수자도 처벌하도록 하는 등 강도 높은 처벌 조항을 대거 포함했다. 이 같은 행위가 적발될 경우 부당 이득액의 3~5배 벌금 및 징역형 가중 등 처벌을 더욱 무겁게 하도록 했다. 기획부동산을 차단한다며 ‘부동산 매매업’에 대해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LH 투기 해법이 ‘시장 때려잡기?’…커지는 비판 여론=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시장은 “사실상 부동산 경찰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말로는 투기 근절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모든 거래를 들여다보고 조금만 수상하면 처벌하겠다는 ‘선언문’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도덕적 실책과 정책 실패로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는데 이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정부가 부동산거래분석원 등 원래 추진하려던 핵심 정책을 강행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엄격해진 부동산 거래 관련 제도 탓에 시장 참여자들의 혼선이 커지고 있는데, 세세한 거래 하나하나까지 들여다보고 사소한 위법행위도 강하게 처벌하면 거래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명확한 범죄 혐의가 없는데도 ‘의심스러운 행위’를 사전 조사한다며 개인금융정보나 과세 정보를 열람하면 그 자체만으로 사찰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정부가 내부 통제도 못하면서 공무원 수천 명을 동원해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고 한다”며 “대국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마치 군사독재 시대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지나친 정부의 권한 집중을 우려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거래분석원의 권한은 개인의 경제활동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개인의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전국민을 손바닥 위에 놓고 살펴보겠다는 건 공산국가에서나 할 법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비대해진 공공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민간 중심의 개발과 시장질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개편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