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0년 백 모 씨는 보험 설계사 출신인 조 모 씨와 보험 사기를 공모했다. 두 사람은 뇌경색 진단 이력이 있는 이 모 씨에게 뇌경색 진단 검사를 받게 했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백 씨는 뇌경색 환자 행세를 했다. 이를 통해 보험사들로부터 진단·장해·입원보험금 등을 청구해 이들이 보험사 등에서 편취한 금액은 9억 2,000만 원에 달했다. 결국 이들은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5년 6월 판결을, 2심에서 징역 5년 10월 판결을 받고 올 2월 3심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받으며 사건이 마무리됐다.
# 60대 여성 김순자(가명) 씨는 위염, 요추와 무릎 염좌 등으로 2019년 한 해 동안 824번 외래 진료를 받고 실손보험금 약 2,986만 원을 수령했다. 김 씨를 포함해 2019년 4개 보험사의 외래 진료 과다 이용자 상위 10명의 평균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약 492회이며 실손보험금 수령액은 약 2,064만 원에 달한다.
◇허위·과잉진료에다 보험 사기로 멍드는 실손보험=‘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 의료보험은 약 3,800만 명이 가입하며 전 국민에게 보편화됐다. 하지만 허위·과잉 진료 급증에 적자가 쌓이면서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보험사가 늘고 있다.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비급여의 과잉 진료를 통한 보험금 청구 증가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병의원은 비급여의 진료비와 진료량을 임의로 정할 수 있어 같은 비급여 진료라도 병원마다 가격이 다르다. 일부 병원에서는 비급여 진료 금액 제한이 없다는 것을 악용하기도 한다. 급여에 해당하는 진료 행위를 한 뒤 비급여 진료 행위를 한 것으로 진료 기록 등을 허위로 조작해 진료비를 부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9일 생명·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손해보험사의 전체 실손보험 발생 손해액, 즉 보험금 등 지출은 11조 7,907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반면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에서 보험금 지급에 쓸 수 있는 위험 보험료는 9조 734억 원에 그쳐 보험사 손실액이 2조 7,173억 원에 달했다.
특히 일부 질환의 보험금이 급증했다. 5개 손보사 기준으로 2020년 백내장에 지급된 보험금만 4,101억 원으로 2017년(881억 원) 대비 네 배가량 폭증했다. 보험금 지급액 중 41%를 차지하는 근골격계 질환은 도수치료 등을 중심으로 3년 만에 50.5%(1조 9,868억 원 → 2조 9,902억 원) 증가했다.
비급여 의료 이용 증가로 실손보험은 ‘손실보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손해율이 치솟고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 위험 손해율은 130.5%로 2019년(134.6%)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30%를 넘었다. 위험 손해율은 발생 손해액을 위험 보험료로 나눈 수치다. 100%를 넘으면 가입자가 낸 돈보다 보험금으로 타가는 돈이 많다는 의미다.
실손보험을 허위·과잉 청구하는 등의 보험 사기도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보험 사기 적발 금액은 8,809억 원으로 전년(7,982억 원) 대비 827억 원 증가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중 특히 손해보험의 상해·질병 보험 상품을 활용한 보험 사기가 증가 추세다. 보험 사기가 급증하면서 공·민영이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공동으로 조사하는 협의회(TF팀)도 25일 구성된 상태다.
◇실손보험료 인상에다 상품 판매 중단까지=실손보험 손해율이 커지면서 보험사들은 올해 일제히 보험료를 인상했다. 나아가 상품 판매 자체를 중단하는 보험사도 급증하는 추세다. 3월 말 현재 13개 손보사 중 3개 사가, 17개 생보사 중 9곳이 판매를 중단했다. 아직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리지 않은 회사들도 신규 가입이 가능한 연령을 50세 미만으로 대폭 낮추거나 인수 심사를 과거보다 강화해 손해율 관리에 나섰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분별한 의료 쇼핑,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보험사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비급여 제도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건복지부가 전체 의료 기관의 비급여 진료비 현황 등을 집계하고 모든 의료 기관에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지난해 12월 통과됐는데, 하위 법령이 빠른 시일 내에 실효성 있게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합리적인 비급여 관리를 위해서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진단이 필수지만 현재는 전체 통계조차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한액이 고시되는 비급여 진료비 표준가격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건강보험 급여 진료는 정부가 진료비 가격을 통제하지만 비급여 진료는 사적 재화라는 이유로 의료 기관에 완전한 가격 결정 권한이 부여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동일 진료와 동일 항목에도 불구하고 의료 기관별로 가격이 달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수준의 상한액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 사기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보험 사기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 8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됐고, 지난해 21대 국회에서도 개정안 4건이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는 보험 사기로 확정 판결을 받은 이에게 지급받은 보험금을 반환할 의무를 부여하거나 금융위원회에서 각 행정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험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비급여를 활용한 실손보험 악용 및 보험 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만큼 개정안이 조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