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느린 성장은 빠른 성공의 '산물'이다

■성장의 종말-디트리히 볼래스 지음, 더 퀘스트 펴냄

삶 삶의 질 급격한 속도로 좋아져

기업들이 팔 품목 점차 줄고

출산율 저하 등 인구도 감소

저자 "성장률 둔화는 필연적

정책·혁신 실패 탓 만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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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개미가 몰려드는가 싶더니 서학 개미도 등장했다. 증시를 붉게 물들인 개인 투자자들은 이제 태평양 건너 미국 증시까지 탐구해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종목들을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 증시 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와 흡사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주식 투자 경험이 없는 학생이나 은퇴자들까지도 앞다퉈 증시에 발을 담그고 있다. 1920년대 후반 대공황, 1970년 오일 쇼크, 2008년 금융위기 등 큰 침체 후에는 성장이 가속화했다는 경험치에 기반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이후 가파른 우상향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성장 경제(Growth Economy)’를 연구해온 미국 경제학자 디트리히 볼래스는 코로나 19의 영향력이 약화해 경제가 회복 단계에 진입하더라도 과거처럼 가파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미 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경제 성장 개론(Introduction to Economy)’의 공동 저자인 그는 2008년 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당초 예상됐던 수준의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지 못한 점에 의문을 품고 경제 성장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 연구의 결과물이 신간 ‘성장의 종말(Fully Grown)’이다.

저자는 적어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에서 경제 성장의 결과치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정책이나 혁신 실패 탓 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가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성장률 저하는 필연적인 것으로, 오히려 삶의 질이 향상됐음을 의미하는 ‘성공의 징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볼래스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생산성, 산업 구조, 기술, 정부, 중국, 인적자본, 인구, 시장지배력, 불평등 등의 변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하나 하나 분석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생산이 상품에서 서비스로 이동한 현상과 고령화, 출산율 저하, 소가족 선호로 나타난 인구 변화 현상을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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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940년에는 사람들이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한 집에 살았기 때문에 배관과 화장실에 놓을 새 변기를 사는 데 돈을 썼고, 에어컨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등 새로운 가전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들을 집 안에 들이느라 바빴다. 집 앞에 자동차 한 두 대도 세워 놓아야 했다. 이처럼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기업들의 생산 활동도 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소비 패턴은 달라졌다. 변기를 하나 더 설치할 수 도 없고, 텔레비전이나 에어컨은 교체 주기가 길다. 결국 소비는 상품이 아닌 서비스로 이동했고, 산업 구조 역시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됐다. 하지만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는 기계화 등을 통해 상품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변호사 한 명이 응대할 수 있는 고객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 수준의 향상은 인구 구조의 변화를 가져 왔다. 자녀가 많을수록 포기해야 하는 소득과 시간이 많다고 인식한 사람들이 자녀를 덜 낳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생식권 주장 역시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인구의 감소는 신규 노동력 공급과 소비에 순환적 영향을 준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미국이 20세기와 같은 경제 성장을 원한다면, 쉽게 말해 집에 있는 가전을 모두 내다 버리고 자동차도 부숴 버리면 된다. 그렇게 생산 현장의 고용률이 높아지고 생산량이 증가하면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다. 아울러 과거처럼 여성들은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의료 기술의 혜택도 누리지 않으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는 오늘날 의성장 둔화는 골칫거리가 아니고, 성장의 산물 임을 강조하기 위한 우회적 설명이다.



이처럼 볼래스가 성장 둔화를 지지하는 것은 성장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장 만능주의를 되돌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성장은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20세기의 잣대로 성장을 평가하고 논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제는 환경, 성 평등, 인종 문제, 기업 윤리, 공정성 등 당면 문제를 포괄하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만7,0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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