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5월 프랑스 탐험대는 서양 최초로 울릉도를 발견하고 한 탐험대원의 이름을 따 ‘다즐레’로 명명했다. 이후 150여 년간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울릉도가 다즐레로 표기됐다. 이 탐험대를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인 라페루즈(Laperouse) 백작이었다.
1741년 프랑스 남부 알비에서 태어난 라페루즈는 15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 후 영국과의 7년 전쟁에 참전했다. 1779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자 라페루즈의 군대는 영국 해군과 접전을 벌여 큰 공적을 남겼다. 178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그에게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아메리카 대륙 북부와 아시아 대륙, 북태평양 항로 등을 개척하는 미션이었다.
탐험대는 1785년 프랑스 브레스트항을 출발해 카나리아제도를 지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에 도착했다. 이어 하와이제도를 거쳐 캘리포니아 해안을 탐사한 후 1786년 9월 태평양 횡단에 나서 1787년 1월 마카오에 닿았다. 1787년 5월 제주도와 울릉도를 거쳐 이듬해 1월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에 기항했다. 같은 해 2월 뉴기니 탐험을 위해 출발했지만 누구도 이것이 라페루즈의 마지막 항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연합체인 쿼드(Quad)가 5일 인도 동부 벵골만에서 프랑스와 함께 합동 해상 훈련에 들어갔다. 라페루즈 백작의 이름을 따 ‘라페루즈 훈련’이라고 명명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포위 전략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중국 역시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포함해 해군 함정 6척을 태평양에 파견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이와 함께 한미일 공조 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흔드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안보에서는 미국, 경제에서는 중국과 주로 협력하자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외교로 버텨왔지만 ‘전략적 모호성’을 고집하기 어려워졌다.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전략적 자율성’에 따라 인권·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을 중심에 두고 부국강병 전략을 펴야 할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