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김밥천국, 저기도 김밥천국. 모두 김밥천국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지만 간판은 조금씩 다릅니다. 맛도, 메뉴도 같은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차이가 있죠.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식당이지만 왜 간판, 메뉴, 맛이 다 다른 걸까요? 어디가 진짜 김밥천국인 걸까요?
'김밥 한 줄에 단 돈 천 원!'이라는 카피를 내세워 원조 국민 분식 브랜드로 자리 잡은 김밥천국. 많은 사람들은 김밥천국을 주황색 배경에 휴먼매직체, 그리고 네 개의 네모로 이루어진 로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이 간판 외에도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디자인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씨체, 로고, 색깔이 미묘하게 다른 이 간판들은 모두 다 김밥천국이 맞습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하나의 프랜차이즈인 건 아니죠.
김밥천국의 간판이 다 다른 이유는 ‘김밥천국’에 상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허청은 김밥천국이 ‘김밥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보편적인 뜻을 갖고 있어 기술적 표장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김밥천국’에 대한 상표 출원을 거절했습니다.
‘기술적 표장’이란 상품의 성질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설명적인 문구를 말하는데요. 대한민국 상표법에 의하면 품질, 효능, 용도, 형상, 가격, 사용방법 등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문구로 이루어진 상표인 ‘기술적 표장’은 상표로 등록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런 문구를 특정인이 독점하면 다른 판매자들의 상품 판매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규정에 따라 당시에는 ‘~나라’, ‘~월드’, ‘~마을’, ‘~천국’과 같은 단어가 개별 브랜드에 대한 식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해당 단어를 독점할 수 없게 규제했고, 심사에서 거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김밥천국의 상표권 등록이 무산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김밥천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분식 전문점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김밥천국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만 해도 다섯 곳이 넘죠. 김밥천국이라는 단어가 아닌, 간판 디자인 자체는 상표권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로고와 디자인을 바꿔 특허청에 등록된 김밥천국 디자인만 해도 수십 개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프랜차이즈고 어디가 개인 사업자의 매장인지 간판만 보고 구별할 수 있을까요?
김밥천국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브랜드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기업 고유의 로고를 상표로 등록했는데요. A 김밥천국은 한자 정(情)과 빨간 반원으로, B 김밥천국은 초록색 성 또는 알파벳 H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간판 좌측에 등록 번호와 프랜차이즈 본사 이름을 함께 드러내기도 합니다.
반면 김밥천국과 달리, 관례를 깨고 상표 등록에 성공한 기업이 있습니다. ‘알바천국’을 운영하는 미디어윌네트웍스인데요. 특허청이 알바천국의 상표등록을 거절하자 미디어윌네트웍스는 특허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진 공방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 ‘알바천국’은 상표로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짜장면이 800원이던 1990년대, 2,000원 대의 고급 김밥이 점령하고 있던 분식 시장에 ‘천 냥 김밥’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김밥천국이지만, 지금은 어디가 원조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김밥천국도 알바천국처럼 상표권 사수에 성공했다면, 김밥계의 건실한 대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도 한층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셨길 바라며, 이상 여러분의 일상 속 경제 이해 도우미, 아는분이었습니다.
/김수진 기자 wsjk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