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하면서 지난 201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7%였던 국가 채무 비율이 올해 48.2%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자영업 손실 보상 등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 50%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우리가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은 미래 재정에 있어 큰 부담이다. 다만 아직 국제기구와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의 재정이 양호하다고 평가하며 국가신용등급도 기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드 구스만 무디스 한국 담당 이사가 26일 서울경제와의 단독 e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상황이 해결되면 우리는 정부가 재정 건전화와 부채 궤도 안정화를 약속하고 이를 지킬 능력이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인구 고령화는 한국의 현재 경제 및 재정 견고성 측면에서 중장기적인 가장 큰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도 지난 3월 무디스와의 연례협의에서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재정 준칙 법제화, 지출 구조 조정, 세입 기반 확충 등 재정 안정화 노력에도 힘써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오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9%, 2023년 -5.9%, 2024년 -5.7%로 재정 준칙을 시행할 예정인 2025년 이전까지 -5%대를 유지할 예정이다. 이는 과거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과감한 재정 지출로 극복한 뒤 곧바로 복원했던 때와 다른 접근 방식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1999년 -3.5%에서 2000년 -0.9%로, 2009년 -3.6%에서 2010년 -1.0%로 위기를 넘기며 빠르게 회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GDP 대비 총지출 규모가 2019년 22.6%에서 2020년 25.6%로 상승한 뒤 2026년까지 25%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까지 재정 확대 정책에 대해 드 구스만 이사는 대부분의 정부에서 사용한 코로나19 경기 부양책 수준으로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경기 대응 정책으로 한국 및 다른 선진국에서도 동일하게 부채 증가가 나타났다”며 “한국은 유사한 국가신용등급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감당 가능한 국가 채무 비율’을 묻자 드 구스만 이사는 “부채의 절대적인 수준으로만 감당 능력을 판단하지 않는다”며 “세입 대비 부채의 원금과 이자 비용을 비교해 상환 능력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통화 구성 및 만기 정보를 포함하는 부채 구조뿐 아니라 자금 여건이 글로벌 자본의 변동성에 영향을 받는 정도도 같이 살펴본다”고 덧붙였다.
기재부는 2025년부터 국가 채무 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 준칙을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다. 드 구스만 이사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공공 지출 증가 압력을 고려할 때, 제안된 재정 준칙은 코로나19를 넘어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현재 국회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부가 이러한 준칙을 자율적으로 적용하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부 스스로 준칙을 존중해 재정을 운용해나갈 것으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IMF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6%로 높이고 민간 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도 3.5%로 전망하는 등 상당수 국내외 기관이 3% 중반대 성장률을 예측하고 있다. 드 구스만 이사는 “미국·중국 등 한국의 주요 교역국들의 강력한 회복으로 수출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내 수요 회복이 다소 지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대외 수요와 투자 확산은 현재의 성장률 전망치 3.1% 대비 상향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무디스 역시 차후 3% 중반으로 높일 것을 시사한 발언이다. 한국의 주된 리스크로 여전히 지정학적 우려를 나타냈다. 드 구스만 이사는 “한국 경제 펀더멘털이 강점으로 평가된 점을 고려할 때 세계경제는 한국의 신용 상태에 대한 구조적이 아닌 순환적 위험 요인으로 간주된다”면서 “북한과의 긴장 관계에 의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주요 제약 조건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