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비혼·동거도 가족될까...여가부, 비혼 출산 논의 착수

여가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확정 발표

민법상 혈연·혼인 중심 가족 정의 변경 추진

자녀 성(姓) 부모협의 결정 원칙 전환 검토

한부모 등 사각지대 계층 포용 가능해지지만

정부가 가족 해체, 비혼 및 동거 조장한단 비판도

여가부-법무부 등 부처 이견으로 발표 한달 늦어져

5년간 추진과정서 부처, 시민단체 간 갈등 첨예할듯

방송인 사유리 씨. /유튜브 캡처방송인 사유리 씨. /유튜브 캡처




정부가 혈연·혼인 중심의 법적 가족 개념을 비혼·동거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비혼, 동거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혈연·혼인 중심으로 짜여진 지원체계 하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소외계층을 포용하는 효과가 있지만 정부가 비혼, 동거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상당해 정책 추진과정에서 관계 부처 간 이견과 여성계와 종교계 간 충돌이 예상된다.



여성가족부는 27일 국무회의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심의·의결하고 확정 발표했다. 가족정책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건강가정기본법에 근거해 부처 간 조율을 거쳐 5년 단위로 수립한다. 이번 계획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된 내용들과 신규로 추진하는 정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혼인·혈연 중심인 가족 개념을 비혼, 동거도 포함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가족의 범위를 명시한 민법 제779조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등을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건강가정기본법에서도 가족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가부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적 제도의 발굴·개선을 추진해 왔으나 법률혼·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 확장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해 정책 대상 확대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비혼 단독 출산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올 상반기 관련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실시한다. 또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하고, 관련 법윤리·의학·문화적 측면에서의 쟁점을 논의하기로 했다.

현행 법에서 가족을 차별하는 규정과 용어를 찾아 바꾸는 작업도 추진된다. 예를 들어 여가부는 자녀 성(姓) 결정시 아버지 성을 따르는 부성우선 원칙이 미혼모와 자녀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야기한다고 보고 법무부에 개정을 요청했다. 현행 민법 제781조 1항은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정하고 있다. 혼인중, 혼인외 출생자로 가르는 법률혼 부모 중심의 친자관계 법 개정도 검토한다.



정부는 법률혼·사실혼이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이 늘어나는 사회 변화를 고려해 배우자 규정 개정도 중장기적으로 검투한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개정해 혼인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거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처벌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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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가정기본법상 ‘건강가정’ 용어가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건강가정’ 용어를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변경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5년 ‘건강가정’과 상반되는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므로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1인 가구 급증, 가정 내 개인 가치 중시, 젠더 갈등 등 사회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가족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에 근거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9.2%로 40%에 육박했다. 1·2인 가구 비중은 전체 세대의 62.6%에 이른다. 반면 4인 이상 세대 비율은 2016년 25.1%에서 지난해 20.0%로 떨어졌다. 또 혼인 감소, 만혼화, 결혼 후 자녀 출산을 꺼리는 경향 등으로 가족 구성이 지연되고 생애주기가 바뀌는 현상도 고려했다. 정부는 혼인·혈연 중심 가족 제도를 바꾸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비혼부·모 등 한부모를 포용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한부모연합,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비혼출산 혐오세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한국한부모연합,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비혼출산 혐오세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혼인·혈연 중심 가족 개념이 뒤바뀔 경우 가족을 규정하는 법적 테두리가 사라지고 제도 악용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예를 들어 동거를 가족으로 인정할 경우 정부 지원금과 복지혜택을 노리고 위장 동거를 하는 사례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가부가 예정보다 한달 늦게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놓고 부처 간 이견이 컸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지난해 국내 체류 중인 사실혼 관계 외국인에게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특히 민법 등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여가부 정책을 놓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호주제 폐지를 계기로 2005년 혈연·혼인 관계를 토대로 가족을 정의했는데 이 마저 없앨 경우 법적 연결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대법원 판례에서 사실혼을 인정하고 있고 이미 한부모·다문화 등 개별법이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민법을 개정하는 실익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민법상 가족 규정을 삭제하거나 개정해도 실익이 없다”며 “국민인식 등을 살피면서 개정 필요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5년간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성계, 종교계 등의 충돌도 예상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21일 담화문에서 “여가부가 추진하는 비혼 동거, 사실혼의 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가족 개념 확대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사유리 씨의 출산을 계기로 비혼 출산이 공론화되자 바른인권여성연합,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종교계가 사유리씨의 KBS 방송 출연이 비혼을 조장한다며 반대하자 시민단체가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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