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매년 책을 한 권씩 쓰고, 그 책을 신자들에게 선물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 추기경은 1961년 ‘장미 꽃다발’부터 2019년 ‘위대한 사명’까지 45권의 책을 썼고, 이 외에도 13권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저술 활동의 상당 부분은 교회법 번역과 그 해설서 발간이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는 저서도 많았다. 우리 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폭넓은 고찰,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이 주된 내용이었다.
지난 2014년 출간한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 수업’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쓴 책이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삶에 대한 깊고 담백한 울림을 준다. 정 추기경은 바쁜 일상 속에 자신조차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자유와 사람의 길을 설명하면서 이를 제품과 제작자, 선박과 비행기의 항로, 천체의 궤도 등에 비유하는가 하면 글 곳곳에 친숙한 시나 노래를 인용해 한결 쉽고 친숙하게 따뜻한 삶의 교훈을 건넸다.
‘사람은 혼자서 행복해지려고 해도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로워집니다. 기쁨을 나눠야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줌으로써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2부 2장 사회생활 中)
2016년에도 행복에 대한 오랜 묵상과 고찰을 담은 수필집 ‘질그릇의 노래’를 펴냈다. 현대인들의 삶을 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와 실천해야 할 덕목을 개인, 가정, 신앙의 차원에서 돌아본 글이다. 인간을 질그릇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갈고닦아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삶임을 강조한다.
‘과거의 모습이 회한이 되지 않게 하려면 현재를 보람 있게 살아야 합니다. 과거가 후회되면 지금이 바로 바른길로 새 출발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고 긴급한 일입니다.’(1장 소중한 시간 中)
‘우리는 평소에 부질없는 집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작은 일에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때로는 해로운 것마저 원하기도 합니다. 어른은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원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5장 새해의 소망 中)
정 추기경은 이 책의 서두에서 황혼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노인의 편안하고 빛나는 얼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그 얼굴이 그의 일생이 행복했음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지나온 삶에 대해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산 모습이라 했던 정진석 추기경. 그의 마지막 얼굴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