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개헌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 안팎에서 개헌 공론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현경대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권 임기 말 여권의 개헌 추진은 집권 연장 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꼼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개헌 시도를 주권자인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재보선 결과를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한 그는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을 ‘검찰 해체’라고 꼬집었다.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북한만 이롭게 한 실패작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미 동맹은 가치 동맹”이라면서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을 주문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에서는 미국, 경제에서는 중국과 주로 협력)’식 접근 방식은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4·7 재보선 후 여권 안팎에서 개헌론이 나오는 배경은 무엇인가.
△1987년 개헌 이후 역대 정권마다 임기 말에 개헌론이 제기되는 것은 주기적 현상이다. 최근 개헌론도 그와 같은 움직임이라고 본다. 과거 역대 정부들은 대통령 임기 말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카드와 집권 연장의 수단으로 으레 개헌론을 제기했다. 현 정권도 비슷한 목적을 가졌을 것이다. 집권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퇴임 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로 개헌을 활용할 수도 있다.
-1987년 이후 역대 정부에서 임기 말 개헌론이 성공한 적은 없는데.
△개헌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차기 유력 대선 주자들이 임기 말 개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이번에 여권에서 개헌론이 본격 제기된다면 실현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꽤 높을 듯하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일단 과거에 비해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여권에 친문(親文) 그룹의 유력 대선 주자가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지율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친문 핵심들은 그가 대권을 잡았을 때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범야권에서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두 주자이지만 제1야당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야당에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세력이 꽤 있다. 만일 여권이 내각제 개헌을 제기한다면 정치권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내각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반감이 적지 않은데.
△바로 그 점을 회피하려고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울 것으로 본다. 현재의 대통령제가 너무 제왕적이기 때문에 온갖 적폐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야 정치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어떤 것인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으로 내각제에 대한 반감을 상쇄할 뿐 사실상 내각제나 다름없다. 대통령에게 외교·국방 권한을 갖도록 했지만 내치를 총괄하는 총리가 정부 조직과 예산 편성 권한까지 모두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이지스함을 더 건조하려 해도 내각에서 예산을 주지 않으면 못한다. 대통령은 허울뿐인 권한만 갖게 되는 셈이다.
-여당 참패로 귀결된 4·7 재보선의 의미와 성격을 평가한다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였지만 현 정권에 대한 국민 전체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4년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준엄한 심판으로 봐야 한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어떤 부분을 주로 심판했다고 보는가.
△역사 인식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것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였다. 문 대통령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해 얼마나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 기간 내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고 시장경제 시스템을 허무는 입법들을 강행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개헌론으로 돌아가보자. 재보선에서 참패한 여당에서 개헌 추진 동력이 나올 수 있나.
△오히려 더 절박하게 개헌론을 제기할 수 있다. 만약 여당이 재보선에서 이겼다면 내년 대선에 친문 측에서 어떤 후보를 내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안심하고 개헌 시도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보선 대패로 대선의 승산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여권이 기득권 보호를 위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1987년 제9차 개헌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따라 여야 합의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당시 원내수석부총무로 있던 내가 여당 간사와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 위원장으로서 개헌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경제 민주화’ 문구가 헌법에 명시됐다고 하던데.
△그렇다. 본래 한 해 전 국회에 제출된 민주정의당의 개헌안에 ‘산업의 민주화’로 돼 있었던 것이 기초소위에서 ‘경제의 민주화’로 바뀐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에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됐다.
-어떤 취지로 ‘경제의 민주화’ 규정이 삽입됐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의 정부 주도 경제에서 벗어나 기업과 가계도 자유로운 경제주체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시대정신에 따라 언어의 뜻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1987년 당시 경제 민주화의 핵심 개념은 정부 권력으로부터 기업과 가계의 독립과 자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여권에서 ‘검찰 개혁’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말로는 검찰 개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검찰 해체 작업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위험천만한 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범죄 혐의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을 범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범죄로부터 국민의 일상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국가 권력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뭔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에 따라 새로 뽑는 검찰총장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차기 검찰총장은 현재 권력과 금권은 물론 사회 단체 유력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검찰의 독립성을 확실히 지켜내야 한다. 특히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검찰권을 적절하게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차기 총장 인선 기준과 관련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상관성이 클 것이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한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폈어야 마땅한데 외려 북한의 세습 1인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돕는 행동을 반복해왔다. 특히 북한 동포에게 자유와 풍요를 안겨주는 정책을 펴야 함에도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우리 국민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이후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가.
△김정은 정권을 유지시킨 것 말고는 우리 입장에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판문점선언의 핵심은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무장해제를 하는 동안 북한은 되레 핵·미사일 역량을 고도화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을 건조할 정도로 무장력을 키웠다.
-최근 문 대통령의 뉴욕타임스(NYT) 인터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고 했는데 대단한 외교적 결례다. 동맹 상대국의 퇴임한 대통령을 그렇게 깎아내리면 어떻게 하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뒤에서 욕할 것이라고 의심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5월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미국 외교가에는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한 얘기와 한국에 돌아가 취한 조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를 하게 되든 동맹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이 대북 정책에서 일치된 목소리를 낼지, 미중 갈등의 와중에서 미국 편에 설지에 대해 신뢰가 부족한 듯하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고 돌아와야 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외교 전략은.
△한미 동맹은 가치 동맹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미 동맹의 가장 핵심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다른 나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미국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안미경중’ 같은 터무니없는 얘기를 꺼내서는 곤란하다. 국제사회에서 안보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은 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최근 1~2년 대만 경제의 성장이 왜 가능했고 중국 화웨이는 또 어떻게 됐는지를 보면 모르겠나.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기술 통제가 곧 본격화할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He is…
1939년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0년 동안 검사로 일하고 1981년 1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뒤 5선 의원을 지냈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 때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국회 법사위원장과 민자당 원내총무를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아 대북 정책과 통일 문제를 다뤘다. 최근에는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헌법 정신 지키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성진 hns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