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영상]‘833조’ 국민연금, 도대체 어떻게 운용하고 있길래 곧 고갈된다는 거야?

기금운용에 관한 최상위 의결조직 '기금운용위원회'

수익률 1% 높이면 연금고갈시점 8년 늦출 수 있지만

위원 대부분 금융시장 이해도 낮아 최적의 결정 못 내려

전문성·독립성·책임성 결여된 지배구조 개편 시급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시가총액? “564조”. 그 다음을 잇는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101조”.

이 거대한 회사보다 큰 금액. 무려 ‘833조원’을 운용하며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지분은 모조리 갖고 있는 ‘국대’ 조직, 혹시 아시겠나요? 네 바로 ‘국민연금’ 인데요.



국민연금은 우리가 매달 납부하는 ‘국민연금보험료’를 모아 집단적으로 운용해, 그 수익금을 미래 세대에 지급하는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데다가 시장에서 덩치가 크다보니 국민연금의 행보는 모든 투자자와 정부 관계자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률을 1% 높이면 보험료율을 2.5%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낼 수 있고, 2056년으로 예정된 연금고갈시점을 8년 정도 늦출 수 있어 기금운용을 잘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최고의 방법이죠.



그런데 이 국민연금이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46거래일 연속으로 줄매도를 하며 약 12조원의 자금을 빼낸 일이 있었죠. ‘큰 손’의 이탈로 금융시장 전체가 휘청거리자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자본이 국내 시장을 이렇게 교란시켜도 되는 것이냐”는 주장을 펼치는 등 청와대에는 ‘국민연금 매도를 막아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들의 격한 반응에 국민연금은 “항로를 바꿔야 하는 지적에 고민하고 있다”며 다시 주식을 매입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가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항로’는 누가 만드는 것이고, 이렇게 들쭉날쭉한 이들의 투자 방향은 믿어도 되는 걸까요? 이번주 캠퍼스에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상위 의결조직…'기금운용위원회'



자세한 내용을 보기 앞서 먼저 국민연금이 어떻게 굴러가는 조직인지 보겠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지배구조의 최상위에는, 기금운용에 관한 최종 의견을 의사결정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죠. 때문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운영 실무는 국민연금공단에서 하고 있는데, 공단의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그 아래에는 여러 조직이 있는데 이 중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서 실질적인 자금 운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임세원 서울경제 시그널부 기자

우리가 포트폴리오 투자라고 하죠.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별로 수익률과 위험도가 다르고 국내냐 해외냐에 따라 또 다르기 때문에 이런 걸 적절히 섞어서 운용하는데요. 그걸 자산군별로 목표 비중을 둬서 가이드라인 삼아 운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 비중은 국내 채권이 37.9%, 해외 주식이 25.1%, 국내 주식이 16.8%, 대체투자가 13.2%, 해외채권이 7% 정도입니다.




이 중 국내 주식의 비중이 21%인데, 지난해 내놨던 ‘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에서 2025년까지 이 비중을 15% 내외로 축소하기로 되어있어요. 올해 초 국민연금이 줄매도를 강행한 것도 이 계획 때문이라고 밝혔죠.

-임세원 서울경제 시그널부 기자

국내 주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오르면서 아까 말씀드린 목표 비중 16.8%보다 많이 올라왔어요. 한 21% 이상으로. 국민연금이 주식으로 팔면 국민연금은 주로 코스피에 투자했기 때문에 코스피 전체가 하락하는 영향이 있는거죠.




물론 국민연금의 선택 방향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에요. 연금 고갈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언젠가 국민의 노후자금이 필요할 때 국내 주식을 팔아서 써야하기 때문에, 사전에 천천히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겠다는 거거든요. 게다가 국내 증시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 수준인 상황에서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에 투자를 하는 것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센 국내 투자자들의 반발과 여론에 부딪히자 국민연금은 “전략적 자산배분 때문이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에 투자자들이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매도했다”고 비난하니까 국민연금은 다시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릴 것”이라며 입장을 번복했죠. 수습 아닌 수습 때문에 다시 여론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실제로 더 많이 늘린 건 아니고, 아직도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기본 지식 없는 위원이 대부분…지배구조의 한계

국민연금의 이런 우왕좌왕한 모습 뒤에는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소위 ‘공무원 조직’의 특징인 책임성 부재, 경쟁 없는 조직의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인데요.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기금운용위원회를 일종의 작은 국회로 볼 수 있습니다.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겠죠. 여기 위원회가 투표로 이뤄지는데, 사실 위원들이 자산시장·금융시장 경험이 없고, ‘전략적 자산배분’이 뭔지도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복지부 장관이 주식구조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임세원 서울경제 시그널부 기자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취지가 우리 국민 다수가 가입한 연금의 의사 결정을 가입자를 대표한 사람이 결정한다 그런 취지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한다는 겁니다. 그 결정이 우리 국민 노후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경제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대표성만 있는 분들이 결정을 한다는 거예요.




이번에 국내 주식을 장기적으로 줄이기로 했다가 다시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조직의 결정이었습니다. 실제 전문성 집단의 안건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지만 설명 주체인 복지부에서 안건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의결됐죠. 인원 구성을 보면 기금운용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고,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차관 등 5명의 정부위원이 당연직으로 운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4인으로 구성된 위촉위원 중에서 관계 전문가는 2명 뿐입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기금운용위원회 밑에 ‘전문위원회’라고해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검토해서 올리면 최종 의결기구가 읽어보고 결정한다는 거 거든요. 읽어도 내용을 잘 모르겠죠. 지금 수백조의 자산운용기구가 이렇게 운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국민연금의 정부의 기금 운용 관여도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복지부에서는 “나쁜 기업을 골라내겠다”며 ‘경제 흑기사’ 역할을 위해 복지부 산하에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 필요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2004년엔 국민연금이 재경부 환율 방어에 사용됐어요. 2년 간 원화 14조 가량으로 미연방정부 채권을 사들였는데, 이자를 주면서 갖다 썼지만 국민연금 스스로 운영해서 얻는 수익률보다 낮은 이자율이었죠.(화면: 납세자TV)


-임세원 서울경제 시그널부 기자

지금 여당 뿐 아니라 야당도 과거 여당일 때 그런 식으로 접근한 적이 많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막대한 이 자금을 손대고 싶은 건데요. 국민연금은 정부 소유가 아니라 가입자 소유인거고, 거기에 정부가 관여하면 안되죠. 정부가 우리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게 아니잖아요.


국민연금기금이 정치적인 수단에 사용된 한 예로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부동산 정책으로 용산 역세권 국제업무지구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은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해 사업에 필요한 투자 자금을 조달했죠. 하지만 토지보상 관련 사업비용이 증가하며 사업은 표류됐고, 과정에서 1,250억원이란 연금보험료가 낭비됐습니다.

▲젊은 인재들 이탈하며 ‘공석’ 많아져도 움직임 느려



또 사공이 많다보니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습니다. 내부 감사, 보건복지부 감사, 감사원 감사, 국정 감사를 받는데다, 일을 하나 추진할 때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이 포함된 위원회가 생겨 일을 수행하는 동력에 사기가 많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임세원 서울경제 시그널부 기자

그런 것 있잖아요.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더 싫은 그런 심리. 그래서 국민연금에서 알아서 esg라던지 그런 취지로 논의하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그렇게 해야한다고 그러면 더 안하는 그런게 있어요. 꼭 정치권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은 엄청나게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가 많은데 누가 딱 책임지는 주체가 없습니다.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뭘 하겠다고 하면 나중에 누가 할지 안정해져 있고 이러쿵 저러쿵 말만 하다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지부가 투자전문가가 될 순 없잖아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의 의사결정은 모두 복지부에서 합니다. 전문가 집단에 맡기고 거기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줬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2017년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사표를 내며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 기금운용본부장을 뽑을 위원회가 구성된 것이 다음해 2월이었으니 그 자리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오시겠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량 있는 운용 인력이 계속해서 이탈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기금운용본부 운용역 4명이 대마초 흡입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3대 기금으로 불릴 만큼 거대한 규모의 국민 노후 자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연금기금 운용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해외의 연금기금으로는 캐나다, 싱가포르투자청 등이 있습니다. 각각 형태는 다르지만 기금운용기구가 정부로부터 독립해 최소한의 독립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고 의결 기관은 기금운용기구의 이사회에 일임해 제 3자의 이해관계가 기금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죠.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캐나다 만이 아니라 네덜란드, 미국, 일본도 다 그래요. 일본은 큰 덩어리를 쪼개서 증권사들이 나눠서 운용하게 분배해서 줬어요. 거기 정부가 끼고 의사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전반에 대한 개정안은 2003년부터 국회에 수차례 제출되었지만 국회의 회기만료 등의 사유로 번번히 폐기되었습니다. 집권당이 의사결정을 하는 한 진척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과거와 달라진 한 가지는 개인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연기금의 운용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단 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답답하게 관료화된 국민연금의 조직 구조를 ‘누구든’ 지적하고 혁신해, 열심히 일해서 낸 우리의 세금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의 권리를 최대한 내세워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영상에서도 우리 삶 속에 스며든 경제 이야기를 찾아 재미있는 캠핑을 떠나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캠핑 친구, ‘버디’, ‘유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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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김지윤 인턴기자 wldbs5596@sedaily.com


정수현 기자·김지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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