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을 총수 없는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를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다. ★본지 4월 22일자 6면 참조
공정위는 쿠팡(자산 총액 5조 8,000억 원)을 포함한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인 71개 기업집단을 다음 달 1일부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고 29일 밝혔다. 공정위는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외국계 기업집단과의 기존 사례 △외국인의 동일인 관련 범위 및 형사제재 문제 △누구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상관없는 쿠팡 계열사 범위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쿠팡에는 김 의장의 동생과 처제가 근무하고 있다. 주요 임원 직급은 아니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각각 억 단위의 연봉을 받고 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면 이들이 특수관계자로 엮일 수 있었으나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감시 대상에서 벗어났다.
공정위의 결정과 관련해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FTA 위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쿠팡 총수 지정 시 한미 FTA에 위반 되는지 여부를 검토한 바 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산업부 측과 관련 사안에 대해 실무 협의를 진행했으며 관련 이슈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 ‘검은 머리 외국인 봐주기 논란’도 제기된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지난 2017년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바 있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문제에 대해 연구 용역 등을 통한 제도 보완에 나설 예정이다. 다만 동일인 지정 제도는 현재와 같이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김 부위원장은 “시장의 지배를 방지하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헌법과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시대정신이자 목표”라며 “우리 경제가 예전 대비 개방화됐지만 동일인 지정 제도는 지금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쿠팡 외에 한국항공우주산업·현대해상화재보험·중앙·반도홀딩스·대방건설·엠디엠·아이에스지주를 대기업집단에 신규 지정했다. 반면 KG는 제외돼 대기업집단은 총 71개로 늘었다.
공정위는 또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자산 총액 10조 원 이상인 40개 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셀트리온·네이버·넥슨·넷마블·호반건설·SM·DB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된 반면 대우건설은 제외됐다. 이들 기업집단은 상호 출자 및 순환 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추가 규제를 받는다.
현대차그룹 총수는 기존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그룹 총수는 기존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각각 바뀌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