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로터리] 세상 끝 남극의 ‘식물공장’

허태웅 농촌진흥청장

허태웅 농촌진흥청장허태웅 농촌진흥청장




서울에서 1만 7,240㎞ 떨어진 세상의 끝, 남극에 세종과학기지가 있다. 누구나 한 번은 밟아보고 싶어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분야의 극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 기지다. 지난 1월 중순 이곳에 국내 유일의 쇄빙 연구선 아라온호가 4개월 남짓 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도착했다. 아라온호에는 컨테이너 형태의 식물 공장이 실려 있었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위치, 제한된 물자만으로 생활하던 대원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제공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이 극지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식물 공장 연구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남극으로 간 식물 공장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식물 공장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0년 ‘세종과학기지의 텃밭’으로 불린 식물 공장이 남극에 보내졌다. 연평균 기온 영하 23도의 혹한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대원들에게 늘 아쉬운 것이 신선 채소다. 인근 칠레 지역에서 2∼3개월마다 채소와 과일 등이 들어오지만 신선 채소는 한참 부족한 상황이었다. 식물 공장에서 길러진 잎채소류는 연구 대원들의 식탁을 신선하고 건강하게 책임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세대 식물 공장 시스템이 노후화되면서 새로운 모델 개발을 서둘러야 했다. 농촌진흥청은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한 2세대 식물 공장을 정비하고 10년 만에 다시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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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구축되는 개량형 식물 공장은 인공광을 활용한 식물 재배 장치다. 10년 전과 달리 쌈 채소뿐 아니라 풋고추·오이·호박 등 열매 채소까지 재배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했다.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해 원격으로 재배 환경을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국내 전문가들이 남극 현지의 연구원들과 수시로 영상 회의를 열고 e메일을 주고받으며 식물 공장 구축 작업을 순조롭게 이끌었다. 현재 식물 공장의 인공광 및 온도·습도 조절과 배양액 공급 장치에 대한 시운전을 농촌진흥청 클라우드에 구축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이용해 진행하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사례에서 보듯 식물 공장은 극한의 환경을 극복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미래 농업 기술이다. 전 세계적으로 열매 채소를 식물 공장에서 키우는 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유망한 벤처기업이나 농축산업과 식품 관련 기업은 물론 건설·제조업 기업도 식물 공장 활성화를 위한 전·후방 산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식물 공장에 대한 기반 기술 연구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2011년에 개발된 식물 공정 생산 공장 원격 감시 환경 제어 시스템이 1세대 스마트팜의 기본 모델이 됐고 이번에 남극 식물 공장에도 적용됐다.

식물 공장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로봇 기술 등 첨단 과학기술을 농업에 접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험대이다. 디지털 농업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중요 분야인 만큼 식물 공장의 산업적 모델과 상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은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디지털 농업 시대, 스마트팜 기술과 식물 공장의 접목을 통해 농업의 영역이 확장되고 농업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다. 과학의 발달은 삶의 변화를 주도한다. 앞으로 10년 뒤,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혁명적인 식물 공장을 남극에 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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