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바보만이 비트코인과 같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2021년 2월 일론 머스크 트위터)
암호화폐의 강력한 옹호론자를 자처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2일(현지 시간) 돌연 비트코인을 이용한 차량 구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트코인 채굴 작업에 화석연료가 사용되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미 규제 당국의 부정적 인식에 더해 투기적 수요로 비트코인 가격에 거품이 잔뜩 끼자 머스크로서도 적잖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이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머스크 쇼크’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결제 허용 중단의 이유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거론했다. 컴퓨터를 활용해 전기를 대규모로 소비하는 비트코인 채굴 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는 테슬라 사업에 암호화폐 결제가 쓰인다는 점이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전기차는 다량의 석유가 들어가는 내연기관차를 대체한다는 목적으로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데는 화석연료가 투입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의 에너지 소비 문제를 지적하면서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실제 전 세계 비트코인의 75% 이상을 채굴하는 중국에서는 채굴에 쓰이는 에너지 40%가량이 석탄 발전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암호화폐 채굴장을 폐쇄하겠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비트코인이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는 국제 여론에 머스크도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나치게 가격 거품이 낀 점도 머스크의 방향 전환을 유인하는 숨은 요인이 됐을 수 있다.
머스크와 비트코인이 강하게 얽히게 된 시점은 2월부터다. 당시 테슬라가 15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구매한 데 이어 차량 구매에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은 급등했고 이를 계기로 많은 투자자가 몰렸던 게 사실이다. 머스크는 이후에도 알트코인 중 하나인 도지코인을 수차례 언급하며 암호화폐 시장의 최대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문제는 가격 거품이다.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이 “투기성이 강한 자산”이라고 혹평한 데 이어 전날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오는 6월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정책 당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트코인의 거품을 빼기 위해 손잡았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특히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마저 월간 기준 13년 만에 최대치까지 치솟으면서 암호화폐는 당분간 조정 가능성이 커졌다.
투자자들은 머스크의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머스크가 “시장 조작을 의도적으로 일삼는 거짓말쟁이이자 악당”이라는 비판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털 CEO는 “머스크가 처음에 비트코인 결제를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환경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어디 있었는가”라며 머스크의 가벼운 입을 비꼬았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