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나흘에 한 번꼴로 매매·입금 등 지연 사고가 반복되면서 시스템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가상화폐 거래소 주문·입금 체계의 안정성이나 투자자 보호 조치 등을 감독하고 강제할 주무 부처와 법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보면 4월 이후 이달 15일까지 모두 11건의 '지연 안내'가 게시됐다. 한 달 보름 동안 거의 나흘에 한 번꼴로 지연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개별 코인과 관련해 수시로 올라오는 “네트워크 이슈로 입출금이 일시 중지됐다”는 안내 공지를 빼고도 이 정도다. 지연 종류별 빈도는 △매매·체결 지연 3회 △원화 출금 지연 3회 △접속 지연 2회 △차트 갱신 지연 1회 △비트코인 신규 입금주소 생성 지연 1회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에 따른 알림톡 인증 지연 1회 등이었다. 지난 14일 오후 6시 42분에도 “접속자 급증에 따른 트래픽 증가로 모바일 웹, 앱을 통한 사이트 접속이 지연되고 있으니 PC를 통한 이용을 부탁드린다”고 긴급 공지가 올라왔다.
거래대금 기준으로 빗썸과 함께 국내 가상화폐 양대 거래소 중 하나인 업비트도 상대적으로 빈도는 낮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각종 문제로 긴급 서버 점검에 나서고 있다. 업비트는 이달 11일 오전 10시 16분과 58분 각 “시세 표기 중단 문제로 긴급 서버 점검을 진행한다”, “서버 점검 완료로 원화, BTC(비트코인) 마켓의 거래가 재개됐다”고 공지했다. 이 시간대 업비트 거래소 화면에서는 시세 등 숫자가 움직이지 않는 오류가 나타났다.
수조 원 거래가 이뤄지는 주문·체결·입출금 시스템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 자체도 심각하지만 투자자 보상이나 재발 방지와 관련한 규정도 거의 없는 상태다. 빗썸의 지난 11일 사고의 경우 수 분간 체결이 지연됐다는 것은 초 단위로 시세가 변하는 가상화폐 거래 특성상 투자자가 당초 의도한 시점과 가격에 거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빗썸 관계자는 “아직 보상은 내부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빗썸 측은 매매 중단이나 지연 등 피해가 거래소 측의 고의, 과실에 따른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보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약관에 따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업비트는 비슷한 내용의 약관에도 불구하고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11일 시세 표기 중단 사고에 대해 보상을 검토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서비스에 장애가 생기면 기본적으로 업비트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아도 정책에 따라 손해액을 보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뀐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종합 검증 역할을 떠안게 된 시중은행들도 최근 잇단 가상화폐 거래소 사고를 주시하고 있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 관련 전산·조직·인력을 갖추라는 것이지만, 매매 지연·중단 현상이 빈발하고 외부 자동 프로그램을 이용한 주문 폭주에 대응하지 못하는 현행 가상화폐 거래소의 불안한 시스템을 방치한 채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외부 컨설팅을 거쳐 최근 은행권에 공통적으로 제시한 자금세탁방지 위험평가 방법론 지침에도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여부' 등 전산시스템 안전성·보안 항목이 주요 기준으로 제시됐다”며 “은행은 실명계좌 발급을 신청한 거래소를 검증할 때 시스템 사고와 처리 이력 등도 당연히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사고가 잦은 근본 원인으로 거래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법과 주무 기관(부처)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입출금 지연 등은 은행으로 보자면 매우 중요한 운영 리스크 관리 문제”라며 “은행에서 이런 종류의 전산 사고나 행정 사고가 나면 반드시 금융감독원이 검사하고 제재나 조치를 취하는데 가상화폐 거래소의 경우 감독하거나 제재할 기관 자체가 없으니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