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셰필드(사진) 국제수소에너지협회 회장은 탈탄소 흐름에 맞춰 ‘수소 사회’의 도래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과 발전·운송 부문을 지탱했던 화석연료의 퇴출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날씨에 따라 출력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공백을 메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셰필드 회장은 “에너지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을 책임질 재생에너지의 생산성은 낮은 상황”이라며 “수소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을 높이고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셰필드 회장은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에너지 캐리어’로서 수소가 주요 영역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한편 수소 가격 인하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지속적인 지원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오는 6월 9~10일 이틀간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략:초격차 수소경제에 길이 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서울경제의 ‘서울포럼 2021’에서 셰필드 회장은 세계 수소시장의 동향과 수소시대가 미래 사회에 초래할 혁명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셰필드 회장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더 이상 옵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더더욱 분명해지고 있다”며 “국가가 경제 회복을 위해 투자하듯 우리는 지금 현재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세계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소, 10년뒤 산업 수송서 최강 에너지원”
셰필드 회장은 저탄소 추세에 따라 수소가 이미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셰필드 회장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75개 국가가 현재까지 발표한 온실가스 제로 전략을 보면 수소를 핵심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며 “올해까지 수소 로드맵을 보유한 국가만 30개를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각국 정부가 수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민간의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엔진회사 커민스와 독일의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와 같은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수소 연료전지 제조 부문에 10억 달러가량을 투자했다”며 “한국의 현대차도 21년 전에 수소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후 사업 규모와 분야를 더욱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셰필드 회장은 수소의 확장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으며 수소 산업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수소 산업에 투자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것은 수소를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예컨대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이나 운송 부문 탄소 배출량 감소 등 다양한 정책적 목표에 맞춰 수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범용성을 바탕으로 수소는 2030년까지 상용차, 기차 및 장거리 운송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비료·정유·철강·항공·해운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응용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저탄소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봤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세계 수소시장 규모는 2050년 12조 달러 규모로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린수소 경쟁력 확보가 관건
셰필드 회장은 다만 수소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수소 활용 범위를 넓히려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수소 가격을 낮추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생산한 그레이수소나 화석연료를 활용하되 이산화탄소를 일부 포집해 저장하는 블루수소에 기대서는 탈탄소 시대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셰필드 회장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수소는 우리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며 “탄소를 대폭 줄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모의 그린수소를 생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린수소가 2030년까지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수소보다 비용이 저렴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세계경제의 최소 33%가 화석연료보다 적은 비용으로 청정에너지에서 전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셰필드 회장은 또 수소 산업을 확대하기 위해 생산과 유통·활용 등 산업 전반을 고루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소 생산과 운송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수소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수소차나 연료전지 등 활용 분야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현재 수소차 부문에서 가장 앞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유럽과 달리 벨류체인 하류 부문에 집중하고 있어 필요한 수소를 수입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셰필드 회장은 “지난 2월 효성이 린데그룹과 하루 30톤 이상의 생산 용량을 갖춘 액화수소 시설을 설립하기로 했다”며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한 밸류체인 확장 움직임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셰필드 회장은 이를 위해 정권을 초월한 일관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수소에 진출한 민간 기업 중심으로 상반기 중 구성될 ‘K수소위원회’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의 정책은 수소위원회가 내놓을 권고안을 계속해서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셰필드 회장은 “현대차는 수소 인프라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SK와 포스코 등 다른 기업들과 제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 간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