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사회, 기업의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ESG 투자 열풍이 국내외에 거세다.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뚜렷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직접 원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가 되겠다고 나섰다. 특히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의 새로운 길’ 책을 발간했다. 국민연금이 ESG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19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필수인데도 걱정 반 기대 반의 상황”이라면서 “국민연금이 새로운 질서 형성을 주도해야 할 시점이어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ESG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라면서 “블랙록을 비롯해서 세계 주요 연기금이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규제 등의 압박 수단으로 기업을 움직이게 했다면 지금은 경제·투자 메커니즘을 통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도 주주 가치 극대화의 종언을 선언할 정도”라면서 “기업의 평판·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ESG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도 나와 있지만 도이체방크나 옥스퍼드대 등의 연구 결과에서도 ESG를 도입한 기업은 자본조달 기업과 리스크를 낮추고 재무 성과는 물론 주가에도 긍정적이었다”면서 “도입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ESG의 평가 기준 등이 기관에 따라 너무 차이가 나는 점을 우려 요소로 꼽았다. 그는 “전 세계 ESG를 평가하는 기관이 600개가 넘고 같은 기업도 기관에 따라 최대 5단계까지 차이가 난다”면서 “심지어 외국계 ESG 평가 기관의 평가 지표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ESG 보고서의 항목과 작성 기준을 통일하고 산업이나 지역, 기업별 여건이나 정책 환경을 수용하는 한국형 ESG 모델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다.
그렇지만 기준의 획일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예컨대 석탄 화력을 활용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투자를 배제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의 철학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투자 배제 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ESG 투자에 선도적인 네덜란드 연기금이나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탄소 발생을 줄이는 대안이 있다면 석탄 화력을 사용하는 기업에 투자하도록 융통성을 주고 있다.
국민연금은 물론 ESG에 대한 기준은 이미 만들어 놓았다. 지난 2019년 말 ESG 원칙을 담은 책임 투자 활성화 방안도 확정했다. 다만 이 방안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에 좀 더 진화한 방안을 내놓는다. 김 이사장은 “기업과 투자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국민연금 ESG위원회(이니셔티브·주도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21일에는 ESG 포럼도 개최한다. 국민연금 ESG위원회의 출범을 알리기 위해서다. 포럼에는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회적가치(SV)위원장,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원장을 비롯해 한화생명·풀무원·에쓰오일·삼천리에서 주요 임원이 참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NH아문디 등 국민연금의 책임투자펀드를 위탁받은 운용사와 신한·우리·하나은행 부행장도 머리를 맞댄다.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앞으로 ESG위원회에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