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네트워크를 아파트에 시공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률상 규정을 공공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내·외 전등, 난방 등의 기능을 제어하는 홈네트워크는 현행법상 시공 때 설비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SH가 홈네크워크를 시공한 아파트 100%가 현행 법정 기준에 미달했다. 홈네트워크 관련 법적 설비 기준이 제정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공공 기업마저 여전히 방기하고 있는 셈이다.
19일 SH가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이성배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행 홈네트워크 관련 설비 기준이 갖춰진 지난 2016년 1월 이후 SH가 착공해 준공까지 마친 공동주택은 총 20개 단지 1만 2,812세대다. 이 가운데 51.8%인 7개 단지 6,771세대에 홈네트워크가 시공됐다. 홈네트워크는 월패드나 이와 연결된 인터넷 기기 등을 통해 집안 내 가전 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시공 때는 현행법에 따라 한국산업표준(KS) 인증을 받아 통신 프로토콜, 보안을 위한 게이트웨이 등 관련 규격을 지켜야 한다. 또 정전에 대비한 예비 전원 장비 등 부대설비도 반드시 시공해야 한다.
문제는 이 기간 공동주택에 시공한 홈네트워크 가운데 KS 기준을 받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점이다. SH 측은 “KS 인증을 받는 건 맞다”면서도 “현재 인증 프로세스가 마련되지 않아 진행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통신단체표준(TTA)을 통해 인증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는 SH 측이 현행 법령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주택법이 위임한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설치 및 기술 기준’ 13조에는 홈네트워크 기기 인증은 KS를 우선 적용하며, 필요에 따라 TTA 등과 같은 관련 단체 표준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홈네트워크의 경우 TTA 시험 인증을 통해 KS를 준수해야 한다고 확인하고 있다. SH 측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는 답변과 달리 본지 취재 직후 준공을 앞둔 위례지구 5·12단지에 대해서는 돌연 홈네트워크 제조사를 통해 TTA 인증을 받으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를 생략해왔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게다가 본지 취재 결과 SH가 홈네트워크를 시공하지 않았다는 6,041세대에도 사실상 홈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6년 착공한 구로구 항동 공동주택지구 한 단지에 설치된 K사의 한 모델에 대해 SH는 ‘홈네트워크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해당 모델 제조사 측은 “조명, 가스 밸브 등을 월패드로 조작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홈네트워크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월패드가 있고, 이를 통해 가전 기기를 조작할 수 있으면 홈네트워크로 규정하는데 모두 조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한 아파트 주민이 홈네트워크 설비가 부실 시공됐다며 제기한 행정소송 판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행정법원은 “세대 내 조명 스위치, 가스 밸브 제어, 디지털 도어락 등을 월패드로 제어한다면 이는 정보통신 및 가전 기기 등의 상호 연계를 통해 통합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홈네트워크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홈네트워크가 설치된 만큼 KS 인증 획득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SH가 자의적 기준을 적용해 법적 의무를 회피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