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1일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 성패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방·외교 전문가들은 대북 협상력을 높이려면 외교적 유화정책과 분리한 투트랙으로 군의 안보 대응 태세를 한층 확충해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핵 협상 실패에 대비한 플랜B도 면밀히 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랜B는 비핵화 협상 장기 표류 혹은 결렬시 국제 제재에 옥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권 생존을 위해 수도권 북부 등을 기습 점거한 뒤 핵 무력을 앞세워 한미의 보복 공격 및 반격을 억제하려 할 가능성을 상정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류인석 육군 대령 겸 국방어학원장은 지난달 한국국방연구원의 정기간행물에 게재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 등을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정치적·군사적 목적을 위해 핵 보복을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핵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제한적 목적을 위한 전쟁을 수행할 경우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잠수함, 특수전 부대, 사이버 공격 등 비대칭 전력을 활용해 국지적인 영토 점령이나 조기 전쟁 종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서해 5도, 수도권 북방 일부 등을 확보하고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우선 전쟁 초기에는 즉각적인 미국의 핵 보복을 피하기 위해 핵탄도미사일이 아닌 재래식 단거리탄도미사일, 장사정포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면 핵을 쓸 것이라는 게 류 대령의 진단이다. 이때 북한은 직접 한국 본토에 핵 타격을 가하기보다는 서해상 무인도나 미군 증원로, 괌이나 주일미군 기지 일대 공해상 수중에서 핵어뢰를 터뜨려 지진해일(쓰나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혹은 상공에서 핵무기를 터뜨려 대규모 전자기파(EMP)를 발생시켜 우리 군의 첨단 지휘통신체계(C4I) 등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군의 증원을 저지하고 한미연합군의 전쟁 수행 의지를 와해시키며 미국 및 유엔사령부 파병국 내에 한반도 전쟁 개입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류 대령은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이 반격하면 북한은 한미연합군을 핵으로 직접 타격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미 진격 부대나 군사시설에 대한 제한적 전술핵 공격을 감행하는 시나리오다. 만약 북한이 도발 후 한미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북한 영토를 일부 상실할 경우에도 핵무기 사용 위협을 통해 전쟁 도발 이전 상태로 영토 회복 협상 등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체적으로는 아군의 주공격을 맡는 기동부대를 극소형 저위력 핵무기로 타격하거나 해당 부대 진격로상에 핵지뢰를 설치해 공격하는 방안이 꼽혔다.
북한이 이 같은 전술에도 실패해 정권의 생존 기로에 놓이면 아직 더 쓸 수 있는 잔여 핵능력을 과시하면서 종전이나 망명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같은 의도마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최후 수단으로 한국의 중소도시 인근에 위협적으로 핵을 사용하거나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하와이·알래스카 인근 해상까지 투하해 미국의 종전 협상을 강요하거나 중국의 적극적 군사 개입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북한은 전쟁 도발시 재래전과 핵전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한미연합군의 대응을 혼란하게 하고 국론 분열, 한미 공조 균열을 노릴 것으로 점쳐졌다. 이에 대응해 한미가 전면전을 벌일 경우 아군 측의 피해 확대, 중국 개입의 우려 가능성도 나온다. 따라서 한미가 북한의 핵 사용을 가정한 작전 계획을 수립해 연습·훈련하고 유사시 정치적 협상도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중국 지상군 개입을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군사적·외교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게 국방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