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 문화 산업을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일본은 왜 그렇지 못한가라는 의문이 특집을 마련한 배경이었다. 이 기획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비판이 자유로운 민주적인 문화,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 세계와 경쟁하면서도 협업해온 것 등을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한류의 부상 앞에서 일본이 갖는 일종의 위기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사였다.
한류의 관점에서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자. 유럽은 근대 문화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로 자부해왔다. 이들에게 오랫동안 아시아 문화의 대표 주자는 중국이나 일본이었다. 실크로드가 생긴 이래 서구에서는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가 매혹의 대상이었다. 일본 에도 시대 유행했던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畵)가 서구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지금 유럽에서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한국 문화다.
유럽의 한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전방위적이다. 클래식 음악과 문학 같은 전통적인 예술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K팝·한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유럽의 넷플릭스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상위에 랭크돼 있다. 유튜브에는 K팝 팬들의 동영상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런던·파리·빈 등지의 최고급 식당 중에도 한식당이 있다. 김재환 벨기에 한국문화원장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열리는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경연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한국인들이 본선 진출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며 유럽의 한류를 설명했다.
팍스아메리카 시대의 문화가 일방적 문화 수출이었다면, 지금의 한류는 서로 섞이고 스며들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 여러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한국 문화 관련 커뮤니티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ARMY)가 보여주듯이 이들은 스스로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함께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며 상호 소통하고 있다. 한류 커뮤니티의 자생성은 한국 문화만의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이는 한류가 글로벌 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는 개방성 속에서 형성됐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풍(中國風)’이나 ‘쿨재팬(cool Japan)’에는 이런 자발적 참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벨기에에서 미슐랭 투스타 식당을 운영하는 한인 입양아 출신 셰프 상훈 드장브르는 자신을 “한국인 태생의 벨기에인이며 세계시민(I am a Korean born, a Belgian man and a citizen of the world)”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모토는 유럽 한류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유럽 한류는 한국 문화를 기원으로 해서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이자 일상이 되고 있다. 1971년 설립된 해외문화홍보원과 재외 한국문화원들이 지난 50년 동안 해왔던 활동의 결과가 하나둘 나타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