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발전 사업자에 대한 허가권을 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같은 부처 내 재생에너지산업과와 분산에너지과에 한 장의 공문을 보냈다. 여수시와 고흥군 내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서둘러달라는 내용이다. 사업자가 원전 3기분에 달하는 풍력단지를 조성한다 해도 송배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전력을 팔 수 없어 발전소를 놀려야 할 판이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전력망으로는 대규모 전력을 수용하기 어렵고 선로를 새로 깔 경우 적어도 8년(345㎸ 기준)이 걸릴 수 있어 당장 묘수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사업 전력망이 구축되기까지 수년간 쌓일 손실은 오롯이 사업자 몫이다. 여수에 100㎿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세우려는 한 사업자는 “민간 사업자로서는 전력망 연결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며 “사업자 대부분이 차입금으로 발전소를 짓고 있어서 전력망이 들어설 때까지 이자나 토지 임대료 등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탈원전·탈석탄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전력망 문제가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저 전원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할 신재생발전단지는 원전이나 석탄 발전과 달리 산발적으로 위치한 탓에 송배전망을 새로 짜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터라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망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 시간 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민원 부담…전력 수요 적은 지역에 재생에너지단지 쏠려
전력망을 보강하려면 발전소부터 수요지까지 곳곳에 송배전망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는데 우선 지역 주민의 반발을 넘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전처럼 국가 중요 설비라며 밀어붙였다가는 ‘밀양 송전탑 사태’처럼 큰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시설 확대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일단 출력을 제한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주민 보상 비용을 포함해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는 설비 확대에 따른 부담을 정부가 온전히 부담하기도 쉽지 않다.
전력망 문제를 심화하는 또 다른 요인은 지역 편중이다. 20일 통계청의 발전설비 기준 신재생에너지 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전남이 2,476㎿로 가장 많으며 이어 전북(2,024㎿), 충남(1,983㎿), 경북(1,740㎿), 강원(1,334㎿), 경기(1,179㎿), 제주(932㎿) 순이다. 지난 2019년 국내 신재생에너지 전체 발전설비량이 1만 3,982㎿라는 점을 감안하면 6곳의 설비량(1만 489㎿)이 전체의 7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대용량 발전소가 위치하지 않았던 지역이 대부분이라 송배전망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특히 전남과 전북 등은 산업단지 규모가 작아 신재생으로 생산한 전력을 경기나 경남 등 산업용 전력 수요가 많은 외부로 내보내야 해 전력망을 조기에 구축하기 더 어렵다. 실제 한국전력에 따르면 올 1분기 누적 기준 지역별 신재생 전력망 접속 완료율은 전남(63%), 제주(51%), 전북(72%), 경북(73%) 순이었다.
재생에너지 보급, 전력망 고려해 균형 있게 이뤄져야
주무 부처인 산업부도 이 같은 문제를 고려해 전력망 보완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 산업부가 산발적으로 위치한 발전단지를 한데 모으기 위해 ‘해상풍력집적화단지’를 신설하고 여기에 위치한 발전단지의 사업자에 추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와 우선 계통연계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집적화단지 지정 후 착공까지 소요 기간에 따라 REC 가중치를 달리하는 ‘스프린트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문제의 근본 원인이 전력 인프라 확충 시기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는 만큼 전력망을 고려한 보급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력망 연결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따져보고 부족한 발전분은 석탄이나 원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을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발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무작정 늘리는 식으로는 전력 수급을 맞출 수 없다”며 “재생에너지가 전력 수급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기여할지 검토한 뒤 부족하다면 다른 발전원을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