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과 포드의 미국 현지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BlueOvalSK)’ 설립 논의는 지난달 LG와 SK 간 배터리 분쟁 해소 이후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배터리 분쟁 합의 직후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할 때 지동섭 배터리사업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도 동행했다”며 “당시 포드와의 합작 투자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2년여를 끌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해결되자 본격적인 현지 투자가 전개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뿐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도 조만간 5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배터리 공장 건설 후보 지역을 선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공격적인 투자에 시동을 걸고 있다. LG와 SK의 배터리 합의 당시 제기된 “최종 승자는 바이든(워싱턴포스트)”이라는 평가가 들어맞는 셈이다.
SK, 美 전기차 시장 공략 탄력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배터리 합작 투자를 추진하면서 LG와의 분쟁으로 한때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미국 시장 공략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포드는 인기 픽업트럭 모델인 ‘F-150’을 비롯한 주요 모델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25년까지 전기차 전환에 약 25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같은 대전환에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공급할 파트너로 SK이노베이션을 낙점한 것이다.
앞으로 SK이노베이션과 포드의 협력은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과의 협력 만큼 공고해질 전망이다. 로이터통신도 포드가 LG와 협력하는 GM과 비슷한 노선을 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SK와의 MOU로 차별화를 위한 핵심 요소를 수직계열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포드의 미래를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11.7GWh 규모의 2공장도 포드 ‘F-150’에 탑재되는 배터리 생산 전용 공장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로 ‘4년 시한부’ 가동될 운명이었지만 극적 합의로 기사회생했다. 2023년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업계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드라이브로 전기차 시장 급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SK이노베이션의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이 달리는 만큼 배터리 업체들의 공격적인 현지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 조지아주에 5조 원 이상 단독 투자
SK이노베이션과 포드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합작 투자에는 민간 기업 간 협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4대 품목(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공급망 강화에 우리 배터리 산업이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SK이노베이션과 손을 잡은 포드의 미시간주 디어본 전기차 공장을 지난 18일(현지 시간) 찾아 “그들(중국)은 자신들이 미래 전기차 산업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자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중국 견제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총괄사장이 “합작은 포드와 SK의 협업 (의미를) 넘어선다”고 의미를 부여한 이유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2조 9,000억 원을 투자해 짓고 있는 1·2공장 옆에 2조 6,000억 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포드와의 합작 투자와는 별개다. 배터리 핵심 소재 투자도 저울질하고 있다. SK의 한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 배터리 셀 공장이 늘어나면 핵심 소재 생산 공장도 동반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며 “배터리 소재에 대한 미국 투자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음극재 소재인 동박은 SK넥실리스가 생산하고 있다.
SK, LG와 美서 진검 승부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추격할 발판을 마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부터 GM와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에 2조 7,000억 원을 들여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달에는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같은 금액을 투자해 제2 합작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각각 35GWh 규모로 두 공장을 합하면 고성능 전기차 1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크기다. 여기에 오는 2025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해 최소 70GWh 이상의 독자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 완성차 1·2위 업체인 GM과 포드가 모두 한국 배터리 업체의 손을 잡고 미래 전기차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며 “미래 성장 산업을 놓고 한미 가치 동맹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