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네 일' 아닌 '내 일' 찾아서…제2의 봉진이형 꿈꾼다

[토요워치-스타트업 창업 도전하는 MZ세대]

상사 실적 위해 일하는 듯한 조직문화

공정 이슈 민감한 MZ세대 거부반응

카카오 김범수·배민 김봉진 대표 등

흙수저 출신 CEO 성공스토리에 매력

전공·배경 무관 실력으로 진검승부

"스타트업서 기회 찾자" 인식 확산





“회사에 있으면 결국 회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상사를 위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스타트업에서도 구성원 모두가 회사를 위한 생각만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구조라고 봅니다.”



최근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21년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이름을 올린 김지원 레드윗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다. 레드윗은 연구 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블록체인 기반 전자 연구 노트 애플리케이션 ‘구노’를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김 대표는 2019년 창업 당시 24세였다. 한창 취업을 준비할 나이에 용감하게 창업에 나선 것이다. 물론 창업 전에 방송 작가와 기자로 아주 짧은 기간 일을 했지만 결국 짧은 직장 생활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김 대표와 함께 ‘2021년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선정된 이상민(23) 뉴빌리티 대표는 심지어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3학년 재학 중에 창업을 했다.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는 것보다 유의미한 사회적 문제를 푸는 게 더 재미있고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주최한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는데, 당시 사귀었던 미국 친구들이 스탠퍼드대에 진학한 뒤 잇달아 창업에 나선 모습도 창업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처럼 ‘이대녀'와 ‘이대남’이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한 데는 MZ세대와는 맞지 않은 조직 문화를 비롯해 자신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 받고 싶다는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가치가 평가 받는 대신 어느 정도 승진할 때까지는 상사의 실적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롯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조직 문화를 ‘공정 이슈’에 민감한 MZ세대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초에는 SK그룹의 핵신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논란이 있었다. 그 어느 해보다 성과급을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큰 폭으로 줄어버린 성과급에 대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연봉 반납을 선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술 마시기 싫은데 왜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고,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상사의 아이디어가 되는 상황을 굉장히 불편하게 여긴다”며 “창업을 하면 불합리한 조직 문화를 따를 필요도 없고 갓 창업한 회사에 입사할 경우 ‘꼰대 문화’가 아무래도 적다. 자기가 좋아서 밤새 일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누가 시켜서 그것도 자신의 가치로 평가 받는 일이 아닌 일을 하는 건 참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오히려 기회가 돼 급성장한 쿠팡·우아한형제들(배달 앱 ‘배달의 민족’ 운영)·컬리 등 수많은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도 젊은 세대의 도전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 원을 평가 받은 비상장사)은 13곳으로 늘어나 세계 6위에 올랐고, 1,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 받은 예비 유니콘은 무려 320곳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어떤 스타트업이 어떤 기회를 맞아 유니콘 이상의 가치를 인정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요즘 대기업을 능가하는 기상천외한 ‘스타 스타트업’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른바 명문 대학을 나오거나 ‘금수저’ 출신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많다. ‘금수저’를 비롯해 ‘흙수저’도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면서 진정한 승부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바로 스타트업 업계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원하는 직장에 취업해서 임원 등으로 승진할 확률이나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이 비슷할 바에는 도전해서 더 큰 성공이 기대되는 쪽을 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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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 무신사의 조만호 대표 등은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의 대표적 케이스다.

김범수 의장의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 일을 했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며 2남3녀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할머니를 포함해 가족 8명이 단칸방에서 살기도 했고 김 의장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고학을 했다. 셋째인 김 의장만 형제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다. 김봉진 대표 역시 한참 민감하던 시기인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운영하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수도공고와 서울예대를 나와 ‘고스펙’과도 거리가 멀다.

‘모텔 청소부’ 출신으로 알려진 이수진 대표는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마저 그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친척 집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또 두원공업고등학교와 천안공업전문대학(현 공주대 천안캠퍼스)을 힘들게 졸업했다. 이외에도 카카오와 인수합병(M&A)하는 크로키닷컴(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운영)의 서정훈 대표, 지피클럽의 김정웅 대표, 여기어때를 창업한 심명섭 전 대표 등도 ‘명문대 간판’ 없이 성공한 경우다.

과거에는 국내 투자자·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 서울대·KAIST 등 명문대 출신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중국·미국·일본 등 외국계 투자사들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러한 공식도 깨지고 있다.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사업을 키워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도 스타트업이 MZ세대를 빨아들이는 이유다. 김봉진 대표 등은 사업 초기에는 국내 투자사로부터는 투자를 받지 못했지만 학벌이 아닌 사업성만을 평가한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기부를 통해 보여준 선한 영향력 역시 MZ세대에는 매력적인 요소라는 분석이다. MZ세대는 착한 기업, 나쁜 기업, 공정성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형편이 어려운 형제들에게 치킨을 무료로 준 치킨집에 “음식은 안 받고 계산만 하겠다”며 ‘돈쭐(돈+혼쭐의 변형된 표현으로 정의로운 일 등을 함으로써 타의 귀감이 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역설적 의미로 사용되는 신조어)’을 맞아보라며 배달을 시키는 소비자들을 비롯해 나쁜 기업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모두 MZ세대가 주축이다. 곽 교수는 “나쁜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하고, 착한 회사는 없는 돈에 주식도 사주고 나름대로 가치 있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게 바로 젊은 세대”라며 “이런 관점에서 김봉진 대표, 김범수 의장 등 자수성가한 스타트업 대표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꿀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업에는 소위 말해 경영학 등 유리한 학과가 있지만 스타트업 창업은 ‘전공 불문’이다. 실제로 ‘문사철’로 불리는 취업 비인기 학과 출신은 취업 기회를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윤소연 아파트멘터리 대표는 인테리어 분야 파워 블로거였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MBC 편성 PD로 일하다 퇴직하고 인테리어 관련 블로그를 운영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적이 없지만 관심이 많았다. 혼자서 집을 꾸미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관심사를 공유했다. 벤처캐피털(VC)에서 연락이 왔다. 창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에 윤 대표는 창업을 결심했고 지금은 소프트뱅크벤처스·삼성벤처투자 등이 투자한 기업 가치 2,000억 원이 넘는 인테리어 스타트업이 됐다.

대체육 스타트업의 윤소현 대표는 대학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 당시 한 유기농 아이스크림에 반해서 아이스크림 공부를 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냈다. 설탕 대신 과일을 기반으로 만든 과당을 쓰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 이 가게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2015년에는 500억 원에 육박하는 기업이 됐다. 이후 회사를 매각하고 대체육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다시 창업했다. 평생을 파이프오르간 연주만 한 윤 대표는 친환경 음식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현재 회사를 국내 대표 대체육 스타트업으로 키워냈다. 배달의민족·토스 등 유니콘을 키워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도 받으며 현재는 대체육 개발·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이처럼 전공·배경과는 전혀 관계없이 회사를 크게 키워냈다”며 “그러다 보니 창업가들이 직원들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과거 대기업에서 보던 ‘스펙’보다는 회사의 비전과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김동현 기자 daniel@sedaily.com


연승 기자·박호현 기자·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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