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 통해 세상읽기] 물유본말物有本末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납득 안되는 사상사고 줄잇는건

지켜야 할 '기본' 지키지 않은 탓

무엇이 먼저인지 기준 바로 세울때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어머니가 네 살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사망하고 아이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운전자는 눈 수술을 한 후 시력이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아 시야가 흐릿한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일으켰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고 소식을 접하면 사고 자체의 참담함만이 아니라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당혹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눈이 흐릿한 상태에서 왜 운전을 했는지, 꼭 이동해야 한다면 왜 대리운전을 하거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즉각 제동해 피해를 줄이지 못했는지, 교차로에서 왜 서행하지 않았는지,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지 등등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왜 그럴까.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 버젓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이로 인해 생명을 잃은 어머니의 운명, 사고로 다친 아이와 하루아침에 비보를 접한 가족의 충격과 앞날이 걱정된다.





사고의 책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중에 법으로 가려질 것이다. 이때 그 책임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다치게 한 행위 자체에 집중될 뿐 앞서 말한 꼬리에 꼬리를 문 물음에 하나도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는다. 아울러 사고를 목격하거나 소식을 접한 이웃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유형의 일이 희귀한 일이라면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래에 ‘이런 일이 아직도 왜 일어나는가’라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사건 사고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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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차량에 적재한 화물이 떨어져 뒤따르던 차량이 파손되고 인명 피해도 발생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운전자는 차량 흐름을 주시하며 자신의 차량을 안전하게 조작하는 기본만 지켜서는 안 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비도 해야 한다. 경적 울리기, 끼어들기와 추월로 인해 사소한 시비가 일어나고 보복 운전도 발생한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무시한다는 이유로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문제 삼아 시비를 가리고자 한다.

생활공간, 거리와 도로만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고공에서 작업하다 일어나는 추락 사고, 무거운 자재와 기구에 깔리는 압사 사고, 밀폐 공간에서 일하다 벌어지는 질식사고 등이 일어나면 그때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해결책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흐지부지된다. 이처럼 안전과 관련한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상 사고로부터 안타까워할 뿐 재발 방지를 위해 이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생활공간, 거리와 도로, 일터에서 ‘편안하게 길을 다닐 권리’ ‘죽지 않고 일할 권리’처럼 기본 권리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사물(사건)에는 근본과 말단,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므로 무엇을 먼저하고 나중에 할지 분별할 줄 안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물유본말·物有本末, 사유종시·事有終始, 지소선후·知所先後, 즉근도의·則近道矣)’고 말하고 있다. 편안하게 길을 다닐 권리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본말에서 말이 아니고 종시에서 끝이 아니며 선후에서 후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상은 결국 본말과 종시 그리고 선후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권리가 가치와 중요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해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본말과 종시 그리고 선후의 전도는 결국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경계와 기준이 명확하다면, 편안하게 길을 다닐 권리와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제도를 보다 촘촘하게 설계하고 부당한 현상에 관한 성찰을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진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공간, 거리와 도로, 일터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면 무엇이 근본이고 말단인지 ‘물유본말’의 상식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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