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모란의 연(緣)






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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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 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당신이 머뭇거리다 돌아선 기척만 알까요. 당신이 돌아간 뒤 사립문 밖까지 달려 나가던 발자국 소리를 모란이 모를까요. 바닥에 떨어진 붉은 잎을 자세히 보지 않으셨군요. 심장 위에 포개어진 심장은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닌 소란이라 하셨나요. 둘만의 봄과 바꿀 수밖에 없는 둘밖의 봄이 있던 시절이었지요. 당신은 스무 날 하고도 몇 날 더 불탔다 하셨나요. 꽃이 지고도 한 계절 더 씨앗을 품고 있는 모란을 모르셨나요. 당신은 봄과 작별했다 하셨나요. 나는 아직도 봄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요.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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