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까지도 끝까지 확장 재정을 고집한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점차 다가오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의 고삐를 죄지 않으면 나라 곳간이 무너지고,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19 격차 해소를 위한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 재정’까지 언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발언의 강도가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과감히 재정 보따리를 풀겠다는 측면에서는 기존과 변함 없는 정책 방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칫 ‘확장 재정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마저도 기존 대규모 재정 지출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금리 상승 및 경기 충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3년 8개월 만에 최대 증가를 기록했고 5~6월은 3%대로 치솟는다는 전망까지 나오며 경기 과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미국의 과도한 재정 지출 계획 초안에 대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로 작용할 수 있다는 대외 리스크로 진단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의 지출 확대는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올해 4%대 성장률을 기대할 정도의 경기회복과 함께 억눌렸던 수요까지 더해지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또 다시 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 지출을 늘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져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제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무리하게 재정을 확장하면 경기 과열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 채무뿐 아니라 자산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여당과 정부는 △손실보상제 △백신 유급휴가 지원 △전 국민 코로나19 위로금 지급 등 다양한 ‘퍼주기’ 정책을 이미 예고해둔 상태다. 구체적 규모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원 금액이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초 자영업자 지원 등을 위해 14조 9,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이미 편성한 상태에서 나라 곳간 씀씀이가 끝도 없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업비만 28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가덕도 신공항 사업 등도 본격 추진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행보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재정 지출을 자발적으로 줄이고 나선 미국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당초 2조 3,000억 달러(약 2,570조 원) 규모로 마련된 부양안을 1조 달러로 삭감하는 내용에 야당인 공화당과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물가 상승에 따라 금리가 인상되면서 경기회복을 막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최근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례적으로 재무장관이 나서 금리 인상을 언급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정부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반면 이날 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비교해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 정부 재정 지출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경제적 타당성도 확인되지 않은 대규모 국책 사업도 증가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국채 발행 외에 재원 조달 방법이 없는데 이 경우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민간 경제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도 “기준금리 인상 이전이라도 시중금리가 먼저 올라 가계와 한계 기업들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반복해 강조하면서도 뚜렷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최근 위기 대응 과정에서 국가 채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증가 폭이 낮고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라고 선진국에 비해 재정 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실질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분기 기준 48조 6,000억 원에 이를 정도다.
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다음 정부로 폭탄을 넘기겠다는 뜻”이라며 “정부 출범 이후 재정 적자를 줄일 제동장치가 없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