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우리 춤춰요


이순화


쓸쓸하다는 말 대신에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우리 춤춰요

그대를 멀리 두고 나는 여기서

스치는 바람과 춤춰요

떠도는 공기와 춤춰요

두 팔과 두 다리와 쓸쓸한 저녁과 춤춰요

찻잔과 연필과 식탁 위 시든

꽃잎과 나는 벌써 이렇게

취해 있는 걸요

어둠이 발등을 두 무릎을 적시기 전에



또 하루가 저물어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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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기 전에

모든 추락하는 것에 손을 얹어

춤춰요

그대를 멀리 두고 나는 여기서

내 긴 머리칼과 하얀 두 손과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굽이쳐 흐르는

산맥과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는 우주의

가난한 영혼과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쓸쓸하다는 말 대신에

우리 춤춰요





이렇게 멀리서도 함께 춤출 수 있었군요. 보이지 않아도, 손잡지 않아도, 그대와 나 사이에 산맥과 강물과 바람을 두고도 춤출 수 있었군요. 공연히 무릎깍지 끼고 노을 너머만 바라보았군요. 추락하는 것들이 아름다운 것은 필생의 춤사위이기 때문이군요. 사랑한다는 한 마디 말보다, 쓸쓸하다는 열 마디 독백보다 춤으로 알겠군요. 춤과 멈춤 사이가 인생이로군요. 두 팔을 저으며 발을 구르며 눈썹을 휘날리며 춤춰요, 우리.<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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