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지극히 소박한 바이든의 예산안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향후 10년간 GDP의 24.5% 지출안

국민 생활 현저히 개선하는데 역점

덜 약속하고 큰 성과 내는 방식 선호

부유층·대기업 감세 논리도 벗어나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예산안이 공개되자 ‘엄청난 규모’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줄을 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에 6조 달러의 예산을 사용한다고 호들갑 떠는 헤드라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차기 회계연도 행정부 예산안에서 현 정부가 제안한 신규 지출 예상 항목들을 뺀 나머지, 즉 기본(baseline) 예산의 규모는 5조 7,000억 달러 정도다.



바이든 예산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대적으로 적은 지출로 큰 성과를 거두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그의 지출안은 거창한 혁명적인 조치를 제안하거나 약속하지 않는다. 그저 미국인들의 생활을 현저히 개선하는 데 필요한 정책들을 제시할 뿐이다. 실속 없이 소리만 요란한 전임 대통령의 허풍 탓인지 새 행정부의 예산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이든의 지출안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의 예산안은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의 24.5%를 지출할 것을 제안한다. 기존의 22.7%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늘어난 예산은 주로 기반 시설 구축과 미국 가족 플랜의 소요 경비이지만 기본 예산의 상당 부분이 국방·의료와 사회 안전 예산으로 묶여 있는 터라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 비해 훨씬 ‘작은 정부’를 유지할 것이다.

새 행정부가 제안한 추가 지출은 재생에너지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특히 부양 자녀를 둔 저소득 가정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정책들을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근로 연령 인구가 거의 늘어나지 않음에도 연 3%의 GDP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반면 바이든의 경제정책 보좌관들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미국 경제가 연 2%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새 행정부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바이든은 덜 약속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는 백신 접종에도 동일한 전략을 적용했다. 그는 아동 부양을 비롯한 가족 정책들이 노동력 참여를 늘리고 아동들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낙관한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안다. 정부는 단기 침체 극복에 상당한 힘을 쓸 수 있지만 정책만으로는 경제의 장기 성장률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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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감세가 성장의 슈퍼 동력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들은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적 위업을 강조하지만 레이건의 임기 중 경제가 빠른 성장을 기록한 기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하다. 지난 1980년대 전반에 걸쳐 미국 경제는 침체기였던 1970년대에 비해 고작 0.015%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대상 기간을 확대해 주와 연방 정부 모두의 과거 성장률을 살펴봐도 감세가 경제적 기적을 일궈낼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바이든이 제안한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가 경제적 재앙으로 연결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높은 경제성장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일리가 있다.

정부의 정책은 경제의 전반적 성장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지만 국민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정부는 일반 대중에 저렴한 의료보험을 공급하도록 보장해줄 수 있다. 또 가난으로 상처받는 아동들을 상당수 줄일 수도 있다. 바이든의 계획은 이들을 비롯해 여러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이다.

바로 이것이 바이든 플랜이 과거의 경제정책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경제 화두는 서민들을 돕기 위한 지출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이념 일색이었다. 채무 위기가 촉발하지 않도록 더 이상의 빚을 져서는 안 되고 부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인센티브를 저해할 수 있으니 지불 능력을 지닌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증세를 해서도 안 된다는 논리가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바이든의 예산안은 그의 행정부가 이런 두려움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예산안은 막대한 적자 지출을 제안하지 않지만 적절히 계산돼 연방 정부의 채무 부담을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게 할 것임을 시사한다. 정부 관리들 역시 해묵은 감세 선동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예산안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돈으로 돌아오는 경제성장보다 감세 도그마를 내친 데 있다. 이런 이념적 해방은 바이든 행정부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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