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 심장에 무리가 와 사망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적지 않습니다. 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심혈관 세포를 보호하는 새로운 치료 방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에 따른 심장 독성을 줄이는 항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이윤진(사진) 한국원자력의학원 생체반응연구팀장(책임연구원)은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가 암 치료 부작용을 줄임으로써 치료 효과와 환자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의학원은 이날 이 팀장과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홍효정 교수 연구팀이 항암제인 ‘독소루비신’을 이용하거나 흉부 방사선 치료 때 발생하는 심독성을 막을 수 있는 특정 물질(항체)을 개발해 유방암 생쥐 모델 실험으로 효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독소루비신은 유방암·방광암·림프종 등에 널리 쓰이지만 그동안 심장 손상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팀장은 “항암제를 오랫동안 고용량 투여한 환자들에게서 더 많은 심장 질환이 나타나고 치료를 마치기 전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동안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돼왔지만 어떻게 심장 질환을 일으키는지 정확한 기전도 밝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독소루비신과 방사선이 심장혈관 세포의 DNA에 지속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이 DNA가 세포 변이를 일으켜 혈관이 딱딱해지는 섬유화를 진행하며 심장근육 세포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DNA 손상을 막을 수 있으면 혈관 손상으로 인한 섬유화도 조절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심장혈관 세포 DNA 손상이 지속되면서 암세포의 증식·성장에 영향을 주는 물질(L1세포부착인자)이 많이 발현되는 것을 관찰한 후 이 물질의 구조 연구를 토대로 이와 결합하는 인공 화합물(항체)을 만들었다. 그는 “유방암 생쥐 모델에 항체 물질을 투여하고 심장 초음파로 관찰한 결과 생쥐의 심장혈관 세포 DNA 손상이 감소하면서 심독성 부작용이 줄고 생존율도 약 50%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그는 “방사선도 직접적인 독성은 없지만 치료 방법에 따라 심장 조사(照射)를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경우 장기간 방사선 축적으로 DNA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며 “이 연구로 항암제처럼 방사선에 의한 심장 손상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타깃 항체를 이용해 심혈관 내피세포가 종종 암으로 발전하는 특징을 가진 간엽세포로의 변이도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는 “실제 임상까지는 아직 먼 얘기지만 항암제 심독성을 조절하는 임상 약물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에서 분자생명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팀장은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닥)을 거친 후 2004년 원자력연구원에 들어가 방사선 치료 기전 등을 연구했다. 그는 “항암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는 후속 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 기자 hw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