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기블리 SQ4(사륜구동)를 타고 액셀을 밟자 잔잔한 진동이 시트를 따라 온몸으로 전해졌다. 겉모습은 고급 세단에 가깝지만 배기음부터 가속 능력은 스포츠에 다름 아이었다. 운전하면서는 달릴수록 더 달리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들었다. 시속 100km까지 4.7초밖에 걸리지 않는 속도감도 좋았고 특히 묵직한 중저음 엔진음이 주행의 또 다른 쾌감으로 느껴졌다. 운전자에게 ‘남다른 특별함’을 선사한다는 홍보 문구처럼 타면 탈 수록 빠져드는 차다.
처음 봤을 때 ‘잘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면부는 공격적 디자인의 크롬바를 사용한 라디에이터 그릴이 마세라티의 상징인 삼지창 엠블럼을 품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측면은 프레임리스 도어와 근육질 라인이 강조된 후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차별화된 쿠페룩을 연출한다. 덕분에 최고급 세단이면서 공격적인 스포츠카라는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승을 위해 차량을 타고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 효과도 알 수 있었다. 수입차 중 벤츠·BMW·아우디 등 독일 브랜드들이 인기 있는 국내 시장에서 이탈리아산 마세라티는 ‘명품’ 성격이 강하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강남 등 부촌을 중심으로 마세라티가 등장하지만 수도권 외곽으로 나갈 수록 주위의 시선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명품백이 비싸지만 많이 팔리는 이유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세라티 중에서는 엔트리 모델이지만 기블리의 가격은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대중적이지 않은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싶다면 명품백과 같이 마세라티는 최고의 패션인 것이다.
마세라티 기블리를 외관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자동차로서 가장 중요한 운전 성능 역시 명품이라는 수식어에 걸 맞았다. 시동을 걸었을 때 들리는 중저음의 엔진 소리는 스포츠카의 본고장 이탈리아산임을 증명하듯 호기로웠다. 가장 기본적으로 세팅된 노멀(normal) 모드로 운전을 시작했다. 가속페달을 밟자 배기음이 커지면서 속도가 빠르게 붙었다. 좀더 자동차의 성능을 느끼기 위해 기어박스의 ‘스포츠(Sports)’ 기능을 눌렀다. 순간 엔진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가속페달을 밟자 숨겨졌던 스포츠카의 본능이 나타났다. 반응은 거침없고 즉각적이다. 단 몇 초 사이에 제한속도인 110km에 다달았다. 실내로 밀고 들어오는 거센 엔진 소리가 기분을 고조시켰다. 제동 능력도 뛰어났다.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정감 있게 감속이 가능했다. 또한 곡선 구간에서도 차체가 탄탄해 흔들림 없이 주행이 가능했다.
운전하면서 느낀 가장 큰 즐거움은 마세라티 기블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배기음이었다. 변속할 때마다 차량 후면에서 터져나오는 배기음은 어느 곳을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욱이 마세라티를 탔기에 보는 이들의 시선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마세라티 본사에는 ‘엔진사운드디자인 엔지니어’라는 특이한 직책이 있다. 말 그대로 엔진소리를 듣기 좋게 만드는 전문가가 있는 것이다. 이 엔지니어는 튜닝 전문가와 피아니스트, 작곡가 등을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함께 악보를 그려가면서 엔진 소리를 조율한다. 운전자를 위한 배기음을 만들기 위해 말 그대로 작곡을 하는 것이다.
안전 사양과 운전자 보조 기능도 명품답게 차고 넘쳤다. 업그레이드된 첨단운전자보조(ADAS) 기능을 탑재해 자동차전용도로 등에서 운전할 때 피로감을 덜어준다. 기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에 차선유지 보조, 액티브 사각지대 보조 기능이 추가됐다. 다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국산차에 비해서도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이 있을 뿐 네비게이션 등 시스템 UI가 즉각적이지 않아 고급 가죽으로 휘감긴 마세라티 내장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킨다는 감상이 들었다. 승합차에 비견될 만큼 큰 차체에 비해 좁은 2열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점들도 마세라티 브랜드 가치에 충성하는 고객들에게는 용서가 될 것이다. 스포츠카의 DNA를 가진 세단을 선택하는 소비자라면 특히 그렇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