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지구용]강·천산갑·열대우림 지킨 6명의 히어로

503일 동안 바리케이트 사수한 여성들·공장 설립 막은 전직 교사 등

2021 골드먼 환경상 받은 6명의 이야기


※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골드먼 환경상’, 들어본 분? 에디터도 몰랐으니까 걱정 말아요. 알고 보니 ‘친환경판 노벨상’으로 유명하더라구요. 각자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한 시민 환경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래요. 올해 6명이 이 상을 받았는데, 이 분들 이야기가 정말 드라마틱하고 짜릿해서 가져와 봤어요.

▲잠깐, 어디서 주는 상인데

골드먼 재단이 1990년부터 수여하고 있어요. 골드먼 재단은 미국의 자선 사업가이자 환경운동을 열심히 지원해 온 로다·리처드 골드먼 부부가 설립한 곳. 매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섬(나라), 북미, 중남미에서 한 명씩 수상자를 선정해요. 우리나라에선 1995년에 최열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받았어요. 수상자에겐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금전적 지원이 이뤄져요.


503일의 사수대, 마이다 빌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루시카 마을의 평범한 주민…이었는데, 크루시카 강에 댐을 짓는다는 소식에 분연히 일어섰어요. 2017년 7월, 강으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503일 동안이나 건설업자들의 불도저, 으르렁대는 정부 관계자들과 맞섰다고. '남자들이 나서면 무조건 싸움난다'는 생각에 여성들로 사수대를 꾸렸다니 천재 같아요. 크루시카 마을 주민이 다 해봐야 2,500명인데, 그 중 300명이 하루 3교대로 돌아가면서 다리를 지킨 거예요.

2017년 8월 24일 새벽에는 풀 장비를 장착한 특수경찰이 무력 행사에 나섰는데 끝까지 버텼어요. 그 후로도 건설업자, 공무원 등이 수 없이 이들을 위협하고 설득했지만 빌랄과 사수대는 굴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마을의 남성들도 열심히 사수대를 내조(!)했다고. 결국 2018년 12월, 댐 건설 결정이 전면 취소됐고 사수대도 12월 19일에 영예롭게 해산했어요. 이후 다리에는 '용감한 크루시카 여성들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대요.

503일 동안 지킨 다리에 다시 모인 빌랄(맨 앞)과 마을 주민들. /사진=골드먼 재단503일 동안 지킨 다리에 다시 모인 빌랄(맨 앞)과 마을 주민들. /사진=골드먼 재단




지오그래피컬이란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빌랄은 "내가 수영을 배우고 숱한 일출을 지켜본 이 강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해요. 발칸 반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속한 지역)에 속속 들어선 미니 수력발전소, 댐이 지역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직접 지켜봐 온 주민들도 너나 할것 없이 합류했다는 후문.

크루시카 강은 70종의 토종 물고기, 멸종 위기에 놓인 전세계 담수성 연체동물 중 40%가 서식하는 보금자리래요.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은 이 지역의 생태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으로 전망됐었다고.

그런데 잠깐, 수력발전은 친환경 아닌가요? 에디터도 혼란스러워져서 알아봤어요. 요약하자면 생태계 훼손이 상당한 반면 발전 비용도 아직까지 비싼 편이라 경제성마저 떨어진다고. 좀 더 진전된 기술, 환경 영향에 대한 면밀한 연구 없이는 아직 어려운 거였어요. 신재생에너지의 미래를 태양광, 풍력발전 둘이 하드캐리할 걸로 전망되는 이유예요.

플라스틱 킬러, 글로리아 마지가 카모토


아프리카 말라위의 플라스틱 퇴출 활동가. 말라위는 2015년 이미 얇은 플라스틱(=비닐류)의 생산·수입·유통·사용 금지법이 도입됐었어요.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플라스틱 업계가 이걸 뒤집으려고 난리를 쳤대요.

하천까지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리키는 카모토. /사진=골드먼 재단하천까지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리키는 카모토. /사진=골드먼 재단


그래서 카모토를 중심으로 한 활동가들이 캠페인을 펼쳤고, 2019년 말라위 최고법원에서 해당 법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어요. 앞으로 말라위에서 모든 1회용 플라스틱을 퇴출시키는 게 카모토의 목표래요. 플라스틱이 상하수도를 막아서 오물이 고이고,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창궐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카모토는 이번 수상으로 말라위 최초의 골드먼 환경상 수상자가 됐어요.

천산갑 인생, 타이 반 응우옌


멸종 위기의 천산갑 1,540마리를 구해낸 활동가. 응우옌은 8살 때 밀렵꾼에게 잡힌 천산갑을 본 적이 있대요. 그 와중에도 새끼를 보호하려고 몸을 둥글게 마는 어미 천산갑을 보곤, 어른이 되면 꼭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천산갑은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식용, 약용으로 밀매돼 왔어요. 최근 10년 동안에 포획된 숫자만 10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돼요. 가뜩이나 천성이 순한 녀석들이라, 사냥꾼이 다가와도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게 전부래요.

'자바 천산갑'을 안고 있는 타이 반 응우옌. /사진=골드먼 재단'자바 천산갑'을 안고 있는 타이 반 응우옌. /사진=골드먼 재단


응우옌은 9,701개의 덫을 제거하는 등 동물 밀렵 반대 운동에도 앞장서 왔어요. 덕분에 최근 7년 간 활동가들이 설치한 숲 속 카메라에 1,600마리 이상의 천산갑이 촬영되는 등 개체수가 늘어나는 조짐이래요.

중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천산갑 매매 규제를 강화(=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들로부터 생겨났을 가능성 때문)했대요. 그런데 정작 천산갑에서 나온 물질로 만든 의약품은 승인해주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고 압박해야 하는 이유예요. 응우옌은 “천산갑은 몸에 비늘이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고, 이들을 잃는다는 건 생태계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시민운동의 불모지에서, 히라타 기미코


일본의 환경운동가. 1997년 기후변화 NGO인 '키코 네트워크'를 세우고 일본 정부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해외 석탄발전소에 대한 금융 지원을 막아냈어요. 쉽게 들리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일본은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미미한데, 전력회사들의 영향력은 거대하거든요.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정부와 금융기관들을 집중적으로 압박(=친환경 에너지로 가야 한다며)하고, 이후로도 꾸준히 목소리를 높인 덕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메이저 금융사인 미즈호의 주주 3분의 1이 석탄발전소 금융지원에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하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건설사 10곳이 석탄화력 프로젝트에 불참하기로 약속했고, 예정돼 있던 석탄발전소 13곳(전체 예정 프로젝트의 40%)이 취소됐어요.

시위 중인 히라타 기미코(맨 왼쪽). /사진=골드먼 재단시위 중인 히라타 기미코(맨 왼쪽). /사진=골드먼 재단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 5위의 탄소배출국이에요. 히라타 씨는 "정부가 태양광, 풍력으로 먼저 움직여야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

아마존의 수호자, 리즈 치카제 추레이


페루의 환경운동가. 이 분 덕분에 아마존 푸투마요 강 주변 지역이 2018년에 ‘야구아스 국립 공원’으로 지정됐어요. 8,094km2에 달하는(=강원도 절반 크기) 아마존 열대우림과 원주민들(=소규모 농어업에 의존)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 곳에는 식물 3,000종·새 500여종·물고기 550여종과 강돌고래·매너티·양털원숭이 같은 희귀 동물들이 살고 있어요. 특히 매너티는 전세계 1,000마리 정도밖에 없는 희귀종.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불법 벌목과 채굴이 횡행해서 몸살을 앓아왔어요.

아마존을 지켜 온 리즈 치카제 추레이. /사진=골드먼 재단아마존을 지켜 온 리즈 치카제 추레이. /사진=골드먼 재단


이 과정에서 추레이는 개발론자들로부터 숱한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당연히 굴하지 않고 지역 토착민, 연구자들, 정부 관료들과 협력해 국립공원 지정을 이끌어냈어요. 그의 희망적인 한 마디. "기후변화에 관한 뉴스가 점점 많이 들려오고 있고, 세계인들이 우리의 싸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용감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네요.

우리 동네는 직접 지킨다, 샤론 라바인


은퇴한 특수교사…였는데, 역시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일어서신 분. 미국 루이지애나 주 세인트 제임스는 하도 암 발병률이 높아서 '암 골목(Cancer Alley)'이라고도 불린대요. 인근 미시시피 강변에 자리잡은 200여개의 공장이 매일같이 오염 물질을 뿜어내 왔거든요. 이 지역의 암 환자 발생률은 미국 전체 평균의 50배가 넘는다고.

여기에 새 플라스틱 생산 공장이 들어서기로 했대요. 1조5,000억원 정도 규모의 거대 공장이, 그것도 저소득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아주 가까이 말예요. 흑인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어요.

티셔츠에 적힌 ‘세인트 제임스, 일어나라’는 샤론 라바인이 조직한 단체의 이름이기도. /사진=골드먼 재단티셔츠에 적힌 ‘세인트 제임스, 일어나라’는 샤론 라바인이 조직한 단체의 이름이기도. /사진=골드먼 재단


라바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일단 사람을 모으고, 거실에서 회의를 했어요. 그리고 청원 서명, 가두 행진, 타운홀 미팅, 언론 홍보 등을 차근차근 조직했다고. 지역 의회의 청문회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꼬박꼬박 반대 의견도 제시했대요. “새 공장이 들어선다면, 매년 450톤 가량의 유독한 폐수가 배출될 겁니다.”라고요. 의회 구성원들을 1:1로 만나서 꾸준히 설득도 했구요. 나중에는 지역 시민단체, 교회까지 다 ‘세임트 제임스, 일어나라’에 동참시켰다고. 미친 조직력 무엇…?

조금 슬픈 대목은 라바인과 주민들이 나서기 전, 세인트 제임스 지역의회는 10년간 재산세 면제 같은 혜택을 주면서까지 공장 유치에 열을 올렸었대요. 일자리와 세수 때문이었겠죠. 높은 실업률·빈곤율에 시달리는 미국 남부 지역의 슬픈 현실이에요. 공장과의 싸움에서 이긴 세인트 제임스 시민들이 앞으로의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길 먼 땅에서 빌어볼 생각이에요.






팀지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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